곱씹을수록 올라오는 씁쓸함…‘보통의 가족’ [쿡리뷰]

곱씹을수록 올라오는 씁쓸함…‘보통의 가족’ [쿡리뷰]

기사승인 2024-09-25 11:00:03
영화 ‘보통의 가족’(감독 허진호) 스틸컷. (주)하이브미디어코프, (주)마인드마크

한쪽은 변호사, 다른 쪽은 소아과 의사. 남부럽지 않게 고상히 살던 형제들의 삶에 균열이 생긴다. 변호사 형 재완(설경구)의 딸 혜윤(홍예지)과 의사 동생 재규(장동건)의 아들 시호(김정철)가 사람을 때려죽이는 CCTV 영상이 세간에 퍼져서다. 신념을 중시하던 재규와 어떻게 해서든 아들을 지키고 싶은 아내 연경(김희애)은 갈등하고, 딸과 자신의 커리어를 지키려는 재완과 이를 지켜보는 그의 새 아내 지수(수현)는 이성적으로 골몰한다. 진실을 마주한 이후 이들 가족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화 ‘보통의 가족’(감독 허진호)은 블랙 코미디 정서를 듬뿍 담은 씁쓸한 군상극이다. ‘내 자식이 범죄자라면 어떨까’라는 가정을 현실화하며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들을 던진다. 최근 청소년 범죄 사건이 사회적으로도 대두된 만큼 현실과도 맞닿아 더욱더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재완은 이성적이다. 국민적인 공분을 사는 살인 사건도 돈만 된다면 수임한다. 재규와 연경은 이타적인 삶을 추구한다. 국제 봉사활동을 다니며 선한 삶을 살아가려 애쓴다. 형제는 치매 모친을 요양 병원에 보내는 문제를 두고 대립한다. 자식의 도리를 다하려는 재규와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는 재완은 시시각각 대립한다.

‘보통의 가족’ 스틸컷. (주)하이브미디어코프, (주)마인드마크

형제의 차이와 이들 가족의 미묘한 틈바구니를 보여주던 영화는 아이들의 범죄 사실이 드러나며 전환점을 맞는다. 부모들은 좌절한다. 잃을 것 많은 재완은 사건을 덮고 싶지만, 도덕성을 강조하던 재규는 시호를 자수시키겠다고 한다. 연경은 격분하고 지수는 상황을 그저 관망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뇌하고 갈등하던 가족들은 서서히 본색을 드러낸다. 아이러니한 상황도 있다. 친모 연경은 우리가 좋은 일을 많이 하지 않았냐며 사건을 묻어버리자 하고, 계모 지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묻고 가는 게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하는 건지 고민한다.

가해자가 된 부모들의 감정 변화는 ‘보통의 가족’을 받드는 주축이다. 현실을 부정하다가도 현실적으로 자식을 구제할 방법을 골몰하고 때로는 양심의 가책도 느낀다. 영화는 이 같은 부모들의 심리와 고뇌를 비추며 개인의 도덕성과 신념, 현실의 굴레 및 사회적 위치 속에서 관객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다. 이들 가족의 헐거움도 적나라하게 담는다. 부모와 자식이 마주 앉아도 휴대폰만 보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를 제3자 시선으로 담아내는 듯한 부감 구도가 인상적이다. 배우들의 미세한 감정 연기와 이를 담아내는 화면 연출이 조화를 이뤄 극에 몰입감을 더한다.

흐름이 긴 건 약점이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인물들의 변화를 차근차근 담다 보니 속도감을 살릴 틈이 없다. 강점은 예상외 장면에서 반전되는 분위기다. 진지한 인물들을 보며 웃음이 터져 나오는 구간이 곳곳에 있다. 다만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영화가 요즘 관객에게 매력적으로 가닿을지는 미지수다. 완성도는 좋다. 쉽게 내리기 힘든 결정 속 인물들의 본성이 도드라질 때 영화의 진가가 나온다. 영화를 본 뒤 제목을 곱씹는 맛도 있다. 내달 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 시간 109분.


‘보통의 가족’ 스틸컷. (주)하이브미디어코프, (주)마인드마크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김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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