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코끼리들은 왜 ‘화가’가 되었을까 

태국 코끼리들은 왜 ‘화가’가 되었을까 

- 태국 치앙마이 ‘그림 그리는 코끼리’ 관광객들 환호
- ‘화가 코끼리’ 실력 수준급?

기사승인 2024-10-06 06:00:06
"코끼리와 조련사의 합작품"
태국의 그림 그리는' 코끼리 쇼'는 치앙마이의 빼놓을 수 없는 인기관광상품이다. 코끼리 전문가들은 “코끼리는 매우 영특한 동물이기 때문에 훈련을 통해 이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동물학대라는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다.

- 코끼리 그림은 조련사의 미세한 조정과 끝임 없이 반복된 훈련의 결과
- 동물 대상으로 한 ‘가스라이팅’인 ‘파잔(Phajaan)’ 
- 일부 동물보호단체 주장은 과장

코에 붓을 끼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 코끼리는 늘 처음 보는 관광객들의 눈을 휘둥글게 만든다. 지난 달 28일 낮 태국 북부 관광도시 치앙마이 ‘매땡 코끼리 공원(Mae Taeng Elephant Park)’에서는 관광객들에게 모자를 씌워주고 볼에 뽀뽀를 해주고 축구공으로 묘기를 부리는 코끼리들에게 연신 환호와 함께 박수갈채를 쏟아졌다. 

하지만 이곳 공원에서 ‘코끼리 쇼’의 하이라이트는 ‘그림 그리는 화가 코끼리’이다. 네 마리의 코끼리가 코에 붓을 물더니 제각각 다른 그림을 그렸다. 코끼리들은 사육사가 물감을 묻힌 붓을 건네면 코로 잡은 뒤 신중하고 정교한 붓터치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양한 칼라로 파란하늘아래 나무를 그리는 코끼리도 있고 언덕과 계곡 사이에 지나는 코끼리와 심지어는 자신의 자화상까지 멋지게 그려내기도 한다.
코끼리쇼에 참석한 관광객들이 화가코끼리들이 그리는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코끼리들이 서서히 작품을 완성해가자 처음 접하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대만에서 온 한 관광객은 “코끼리가 지능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사람보다도 오히려 더 그림을 잘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매우 놀라웠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코끼리화가 그림이 완성되고 전시장에 그림이 놓여지자 관광객들이 구매를 위해 그림을 자세히 살피고 있다.

코끼리들이 그린 작품은 1500바트(한화 6만원)에서 2000바트(8만원) 정도에 관광객들에게 팔린다. 대부분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구입한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그림을 잘 그리기로 소문난 천재화가 수다(SUDA) 코끼리의 자화상은 경쟁이 붙으면서 한때 수천만 원에 팔리기도 했다.
"제 모습 그려요"
천재화가 코끼리로 알려진 '수다(SUDA)'가 기본 코끼리 형태의 그림을 그린 후 얼굴에 붓터치를 하고 있다.

어떻게 SUDA는 천재 화가가 되었을까?
믿기지 않는 그림 실력에 유튜브 조회수가 수천만이 넘었고 우리의 매스컴에도 여러 차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SUDA에게 천재라는 칭찬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정말 코끼리가 그린 그림들이 순수하게 붓에 물감만 묻혀주면 코끼리가 알아서 자신만의 그림 세계를 펼치는 걸까?
4마리의 코끼리 화가 중 한 마리가 그린 완성된 그림을 조련사가 들고 코끼리 그림 전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마디로 답은 ‘아니다’이다.
물론 동물 중에서도 IQ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코끼리가 반복 훈련을 통해 아주 기초적인 그림은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감탄할 정도의 그림 실력은 모두 조련사들의 몫이다. 그들은 관광객 뒤편에 가능한한 보이지 않게 서서 코끼리의 예민한 귀를 위, 아래 그리고 좌우로 잡아당기고 비틀고 혹은 ‘불훅(bullhook)’이라고 불리는 쇠갈고리로 찔러대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상아를 잡고 움직이면서 그림을 완성 시킨다. 그림을 시키는대로 제대로 그리지 못하거나 시간 내 완성을 못하게되면 조련사의 압박이 심해지고 코끼리들이 불안해하는 모습도 목격되었다.
코끼리에게 물감을 묻혀준 조련사가 쇠꼬챙이 ‘불훅(bullhook)’과 자신의 손으로 화가코끼리의 귀와 상아를 적절하게 조정해가며 코끼리의 붓터치를 도와주고 있다.

‘파잔(Phajaan)’을 아시나요?
‘매땡 코끼리 공원’에는 30∼40마리 정도의 코끼리들이 있다. 인근에 위치한 몇 개의 코끼리 공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코끼리를 보유하고 있다. 쇼에 참여하는 숙련된 코끼리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코끼리들은 사람을 태우고 정글과 강을 걷는 트레킹에 동원된다.
인간이 코끼리를 길들인 역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야생에서 잡아오거나 어미에게서 태어난 지 2,3년된 어린 코끼리들은 인간에게 복종하기위해 ‘파잔(Phajaan)’이라는 의식을 거친다. 
"얼마나 연습했을까"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 코끼리가 코를 이용해 축구공을 뒤로 보내 올리자 뒷발로 공을 차 올리고 있다.

태국, 라오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와 인도에서 코끼리 관광업이 성행하는 지역에서 많이 이루어는 파잔은 3,4일에서 길게는 열흘 가까이 어린 코끼리를 밧줄이나 쇠사슬로 단단히 묶어놓고서 ‘불훅(bullhook)’이라고 불리는 쇠갈고리로 온 몸을 찌르고 때린다. 코끼리의 야생성을 없애고 인간에게 복종하게 만들기 위해 죽기 직전까지의 극도의 고통에 노출시키는 통과의례다. 이는 태국 전체 코끼리의 4분의 1이상이 이 의례를 거친다고 하는데 이 때 일부 어린 코끼리들은 고통을 견디지 못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파잔 의식을 통해서 코끼리는 저항하거나 탈출하려고 해도 소용없다는 무력감을 학습하며, 야생성을 잃고 사람의 말을 따르게 된다. 이후 인간에 의해 가스라이팅된 코끼리들은 죽을 때까지 공연이나 노역에 동원되는 것이다.
"잘 그릴 수 있지"
조련사가 붓에 물감을 뭍힌 후 코에 붓을 끼워주고 있다. 이후 조련사는 관광객이 보이지않는 코끼리 뒷편에 서서 코끼리 귀를 상하좌우 누르거나 비틀어가면서 화가코끼리가 훈련받은대로 붓터치를 할 수 있게 조정한다.

파잔 의식을 거친 공연장의 코끼리들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할 때까지 쇠꼬챙이로 얇고 예민한 귀를 고통스럽게 찔려가면서 걷기, 인사하기, 그림 그리기 등의 묘기를 배운 후 마침내 인간의 돈벌이 도구로 전락한다.

일부 동물보호단체의 주장은 과장?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치앙마이 코끼리 공원 관계자나 현지 여행업계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태국 전체 3천∼4천 마리 가량의 코끼리 중 1천 마리 정도가 굶어 죽었다고 말한다.

현지에서 만난 한 여행업계 대표는 “기후위기가 심해지고 개발에 따른 서식지 파괴 등으로 야생코끼리들이 큰 위협을 받고 있다”면서 “코끼리 공원에 살고 있는 코끼리들은 비록 트레킹과 공연을 위해 길들여졌지만, 안정적인 먹이 공급과 병원치료가 가능해 야생코끼리 보다 더 안정적으로 오래 살고 있다”고 말한다. 

코끼리 공원 관계자는 쇠꼬챙이 ‘불훅’의 사용에 대해서도 “아시아 코끼리가 아프리카 코끼리보다 상대적으로 작다고 하지만 평균 몸길이 5~6m, 키 2~3m, 무게 3~5톤가량의 커다란 덩치여서 훈련되지 않은 야생 코끼리는 언제든 큰 사고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끼리는 가죽이 두꺼워 ‘불훅’으로 자극해야 겨우 반응한다. 길들이기 과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이후에는 바나나 등 먹이를 사용해 훈련시킨다”면서 “일부 동물보호단체의 주장은 과장된 부분이 많다”고 해명했다.
"쇼 보셨으면 먹이 좀 주세요"
코끼리 공원의 코끼리는 한 마리가 하루 200-300kg 가량의 옥수숫대를 비롯 먹이를 제공 받는다고 한다. 먹이 공급과 코끼리 병원비 재원의 대부분은 관광객들로부터 벌어들이는 수입이다. 야생성을 잃은 공원의 코끼리들은 자연으로 돌려보내도 스스로 생활하기 어려운 현실이기에 공존이 불가피하다.

그는 또한 “코끼리는 워낙 먹성이 좋아 한 마리가 하루 200-300kg 가량의 옥수숫대를 비롯해 먹이를 공급 받는데 야생코끼리는 굶주림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 수명이 50년을 넘기지 못한다”며 “수의사들이 건강을 챙겨주고 먹이공급이 원활한 코끼리 공원의 코끼리들은 70년 넘게도 산다”고 주장했다.
쇠꼬챙이 ‘불훅'
관광객들을 태우고 트레킹에 나선 코끼리들. 조련사들은 조금이라도 코끼리가 야생성을 보이면 불훅으로 코끼리를 찌르며 통제한다.

코끼리 쇼를 보고 코끼리 등에 올라타 트레킹 체험도 해보았다. 코끼리농원과 여행업계 관계자의 이유있는 항변도 들었지만 그래도 야생코끼리의 삶이 길들여진 농원의 코끼리들보다는 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코끼리 공원에서 만난 한 한국인 관광객 역시 "코끼리쇼를 보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해 코끼리 트레킹 체험은 하지않았다"면서 "코끼리가 머리가 좋다면 그만큼 그들이 느끼는 고통도 더 클 것 같다. 이 같은 프로그램은 앞으로 참가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태국 치앙마이)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곽경근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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