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의 숨은 실세, 시장 정보통의 세계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북한 경제의 숨은 실세, 시장 정보통의 세계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기사승인 2024-10-18 12:41:08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북한에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장마당과 상점, 고급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돈을 굴리는 돈주(錢主)는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형태의 뇌물 구조가 뿌리내렸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도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생적인 시장경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전히 살벌한 독재 체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양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10년간 조사를 해왔다. 탈북자 100여명을 상대로 장기간 심층면접을 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평양의 시장경제 작동 시스템을 분석했다. 폐쇄적인 북한 내부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의 통계자료와 탈북자들의 증언 역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사한 북한 사회와 경제의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새롭게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재한다.


1. 북한의 시장 : 가격신호의 중요성


북한은 국가가 인정한 공식 시장과 주민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비공식 시장이 공존하는 독특한 경제 구조를 가진다. 이를 통틀어서 시장경제라고 부르는데 북한 주민들의 생계와 북한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격신호는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격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북한 무역회사와 도매상인(돈주)들은 직접 시장마다 그들의 시장정보통을 세워 놓았다. 시장정보통은 평양시에 있는 시장마다 상주하며, 물품의 가격을 일일 보고한다. 무역회사와 도매상인들은 평양뿐만 아니라 지방 시장의 물가도 파악하고 있어서 물품의 수요와 공급을 정확하게 알고 가격신호가 주는 메시지 대로 대처한다. 

북한 시장에서 물가의 변동을 체크하는 시장정보통을 중심으로 가격 속에 포함된 시그널은 시장경제에서 중요한 경제적 정보다. 


2. 평양시 중구 시장의 위력


1990년대 중반,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다. 이 시기에 국가 배급 체계가 붕괴되면서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자연스럽게 장마당에 의존하게 됐다. 

북한위정자는 계획경제 틀 안에서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게 됐다. 2002년 7·1조치와 2003년 종합시장 건설로 시장경제를 제도와 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평양에서도 통일거리시장이 본보기로 세워졌다. 그 이후에 평양시 한 구역에 두 개의 공식적인 시장이 들어서면서 평양시에서도 시장이 꽃을 피우게 되었다.

특히 평양시 중구시장은 부유한 소비층이 있어 고급스러운 상품이 즐비하며, 돈주들이 가장 많은 시장으로 평양시에서 명실공히 대표 시장이 됐다. 평양에 있는 다른 시장들과 연계하여 대규모 물품거래가 이뤄지고, 전국 도매시장을 컨트롤하는 돈주들이 있어서 시장의 메카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북한 시장의 구조는 국가 계획 가운데 건설되어 전국적으로 비슷하다. 상품의 질적 차이만 있을 뿐이다. 시장 건물 안에는 시장관리소가 있어서 시장을 관리하고, 상인들의 짐을 보관하는 장소가 있다. 시장의 품목으로는 공업품, 식료품, 농축산물 즉 식량 및 생활필수품을 공급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볼 때 특이한 것은 시장 입구에 CCTV가 있고, 보위부와 보안원이 시장 건물 안에 상주하고 있어서 감시와 통제가 심하다는 것이다. 평양시 중구역에 있는 중구시장은 상인들이 3000명이었지만 최근에는 수요자가 증가하여 6000명으로 늘어났다. 중구시장에 앉아 있는 상인들은 허름해 보이지만 평양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물품을 공급하는 거상(巨商)이다.



3. 시장 정보통의 역할과 중요성

시장에서 활동하는 정보통은 북한 시장경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자기가 맡은 상품의 가격을 기록하고 분석하여 소속된 무역회사나 도매상인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정보통들은 시장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동향도 파악한다. 예를 들어 특정 상품의 수요가 급증하거나 공급이 부족해질 경우, 이를 빠르게 감지하여 상인들에게 알려준다. 상인들은 재고를 조절하거나 새로운 거래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북한의 무역회사 1급은 대기업으로 200~300개 존재하며 주로 중앙당 산하가 90% 이상이다. 2급은 중견기업으로 1000개가 있고, 3~5급은 중소기업으로 2만3000개가 있다. 

1급 무역회사는 전국 조직으로 간부와 노동자가 2~3만명 구성되어 있다. 무역회사는 각 도시, 군, 구역에 지사가 20개가 있으며, 지사 아래에는 사업소가 있는데 원천동원사업소나 수출품 가공사업소 200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사업소는 각종 판매소와 출장소, 기지, 외화벌이 사업소가 2000여개 있다. 

이러한 무역회사는 광물, 수산물, 농토산물, 인력수출, 봉제공장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외화벌이를 하고 국내로 식량 및 생활필수품을 수입한다. 수입한 물품들을 수많은 도매상인에게 제공할 때 물품의 시장가격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장에 무역회사의 정보통을 보내 일일 가격을 보고하게 하고 있다.

북한의 돈주들은 현금보유액에 따라 100만달러(10억)를 소유하고 있으면 대돈주, 10만달러(1억)면 중돈주, 5만달러(5000만원) 이상 가지고 있으면 소돈주로 부른다.

평양시 락랑구역에 중앙당 퇴직자 아파트가 있다. 중앙당 간부로 있을 때 돈을 모았지만 직접 사업을 하기에는 국가의 감시가 심하여 며느리에게 자금의 일부를 주고 도매상인의 역할을 맡겼는데 매우 잘하여 큰 돈주로 성장하게 됐다고 한다. 

평양시 중구시장에서 도매상인은 신발 도매(100명), 의류 도매(300명), 담배 도매(200명), 통조림 도매(50명), 식용유 도매(100명), 당과류 도매(100명), 조미료 도매(200명), 핸드폰 도매(50명), 건설자재 도매(50명), 사무용품 도매(30명), 악기 도매(10명), 차 부속품 도매(30명), 가구 도매(10명), 가전제품 도매(50명), 수산물 도매(200명), 쌀 도매(300명), 과일 도매(100명), 육고기 도매(100명), 술 도매(30명), 빵 도매(100명), 야채 도매(200명), 짐승 도매(10명), 석탄 도매(100명), 돈 장사(100명) 등이 있다.

도매상인들은 무역회사를 통해 물품을 받고 평양시 다른 시장과 연계하여 도매를 할 뿐만 아니라 평성의 도매시장과 전국적인 시장과 연결하여 물품을 공급하고 있다. 


4. 휴대폰 일반화로 포괄적인 시장분석 가능

최근 몇 년간 북한에서도 휴대전화 사용이 증가하면서 정보 교환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과거에는 주로 대면보고나 서면 기록에 의존했지만, 이제는 휴대전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는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상인들이 더 빠르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장사하는 사람은 북한에서 휴대전화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기 때문에 급속도로 휴대전화가 증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휴대전화는 또한 시장 정보통보다 넓은 지역에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해주며, 이를 통해 정확하고 포괄적인 시장 분석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기술 발전은 북한 내 비공식 경제 활동을 더욱 활성화시키고 있다.

5. 시장정보통을 넘어 사회 변화의 정보통로로

북한 시장에서 활동하는 정보통은 세심한 관찰과 기록을 통해 시장 경제의 흐름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의 노력은 무역회사와 도매상인들이 효과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이는 결국 북한 주민들의 생계와 직결된다. 이러한 시장경제 활동은 북한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향후 북한 사회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를 뛰어넘어, 북한 주민들의 삶과 직결된 중요한 경제적 공간이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정보통들의 역할은 단순한 가격 기록을 넘어서는 것으로, 그들의 활동은 북한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끌어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곽인옥 교수
inokkwak@hanmail.net
곽인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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