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승인-집단유급, 기로에 선 의대

휴학승인-집단유급, 기로에 선 의대

기사승인 2024-10-22 06:00:08
서울의 한 의과대학 전경. 쿠키뉴스 자료사진

서울대 의대가 학생들의 1학기 집단 휴학을 승인한 가운데 교육부가 서울의대에 대한 고강도 감사를 마쳤다. 정부가 내년에 복귀한다는 전제 하에 조건부 휴학 승인이 가능하다는 당근책을 제시했지만 의대생들은 요지부동이다. 학생들의 집단 유급·제적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동맹휴학은 인정할 수 없다는 정부와 조건 없이 휴학 승인을 해야 한다는 의료계가 부딪히며 혼란이 커진다.

전국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를 비롯한 의대 교수들은 21일 세종 교육부 청사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고 의대생들의 휴학 승인을 촉구했다. 의대생들의 휴학 결정은 ‘최소한의 학습권을 보장받기 위해 학생들이 스스로 내린 자기 결정권’이라는 주장이다. 

최창민 전의비 위원장은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학생들의 정당한 휴학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이는 학생들의 기본 권리와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이미 올해 교육은 불가능하다. 당장 휴학이 승인돼야 한다. 더 이상 총장들을 협박하지 말고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부터 의대생들은 의대 입학 정원 증원 등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 추진에 반대하며 집단행동의 일환으로 수업을 거부하고 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대 재적생 1만9374명 가운데 653명만 2학기 등록금을 납부했다. 이대로 둘 경우 학생들의 유급·제적이 불가피해진 서울의대는 지난달 30일 780여명의 휴학을 일괄 승인했다. 서울대 학칙에 따르면 학생이 휴학을 신청했을 때 이를 받아들일 권한은 총장이 아닌 단과대 학장에게 있다.

서울의대 측은 학생들의 2학기 복귀를 설득하기 위해선 1학기 휴학 신청 승인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서울의대 1학년 학생 중 2학기에 수강을 신청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지난 15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일반적으로 휴학을 신청하면 바로 승인할 수 있지만, 유보한 이유는 학생들의 복귀를 최대한 설득하기 위함이었다”며 “집단 유급을 막을 필요성이 고려됐다. 학생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은 미래 의료인 양성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부 정책에 반발해 낸 휴학은 정당한 휴학 사유가 아니므로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교육부는 서울의대를 상대로 지난 2일부터 21일까지 고강도 감사를 벌였다. 현행 고등교육법 60조는 ‘학교가 학사 등에 관해 교육 관계법령 또는 이에 따른 명령이나 학칙을 위반하면 교육부 장관이 기간을 정해 학교의 경영자(이사장)나 총장에게 시정이나 변경을 명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현행법에 따라 입학 정원 감축, 모집 정지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교육부 측은 감사 연장 여부에 대해 “자료 정리 후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대 의대 학생 100여명이 21일 서울 종로구 서울의대 앞에서 교육부의 감사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신대현 기자

서울의대 학생 100여명은 이날 서울의대 앞에서 집회를 열고 교육부의 감사를 규탄했다. 김민호 학생회장은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휴학에 대한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다’는 발언은 황당한 궤변에 불과하다”며 “학생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현실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교육부가 감사 과정 중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무분별하게 회수해갔다고도 주장했다. 김 회장은 “마치 압수수색하듯 학생들을 대하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정부는 지난 국회 연석 청문회에서 민감한 개인정보라며 의대 배정위원회 회의록과 명단 제출을 거부했다”라면서 “행정 관료들의 정보는 보호받아야 하고, 학생들의 개인정보는 소홀히 다뤄도 되는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부는 의대를 보유한 전국 40개 대학들에 2개 학기 초과 연속 휴학을 제한하는 규정을 마련할 것을 주문하며 학생들이 내년 1학기에 복귀할 경우에 한해 휴학을 받아주라고 요청한 상태다. 하지만 의대 입장에서 휴학 승인이 불가피하다는 게 의학교육계의 중론이다.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대로 그냥 두면 유급·제적인데 이는 파국을 의미한다”라며 “이를 막으려면 각 대학의 휴학 승인 결정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학생들의 유급·제적을 막기 위해 의대들의 휴학 승인은 줄을 이을 전망이다. 가톨릭의대는 2학기 복귀 시한을 21일로 제시했다. 2학기 최소 수업 가능 일수를 고려한 조치다. 충북의대도 학생들에게 다음 달 1일까지 수강 신청을 추가 부여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발송했다. 의대 교수, 학생, 학부모들의 휴학 승인 압박도 커지고 있다. 최근 강원의대·경북의대·부산의대 교수들과 학생들, 전국의대생학부모연합은 조건 없는 휴학 승인을 요청하며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의대생들이 유급될 경우 등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는데 정부와 학교 측을 상대로 대규모 소송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인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대를 제외한 전국 9개 국립대 의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학년도 1·2학기 휴학을 신청한 의대생의 등록금 납부 총액은 총 147억5700만원으로 집계됐다.

학생 휴학이 인정될 경우 대학교는 학생의 요청에 따라 등록금을 반환해야 한다. 그러나 유급의 경우 학칙상 휴학이 인정되지 않아 등록금을 반환할 필요가 없다. 끝내 의대생들의 휴학이 인정되지 않고 유급되면 이미 낸 등록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 경우 의대생들이 정부와 학교 측에 금전적 손실에 대한 무더기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김 의원은 “유급이 현실화한다면 등록금 반환과 관련한 대규모 소송전 등 문제가 새롭게 쟁점화할 수 있다”면서 “의대생 대규모 휴학 신청 사태에 대한 교육부의 대책 마련과 갈등을 해결하려는 책임 있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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