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굽이도는 산간도로 따라 오색가을
- 단풍, 이상기후로 예년처럼 곱지 않아
지난 9월 말 산림청에서 발표한 ‘2024 산림단풍 예측지도’에 따르면 올해 단풍은 지역별 차이는 있지만 올해는 지난해 대비 단풍이 다소 늦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수종별 단풍 절정 시기는 참나무류가 10월 28일, 단풍나무류는 29일, 은행나무는 10월 31일로 발표했다. 특히 신갈나무의 단풍 절정 시기는 최근 2년 대비 약 5일 정도 늦어질 전망이라 했다.
최영태 산림청 산림보호국장은 “기후 변화로 인해 늦더위가 계속되고 있어 단풍 시기가 작년보다 늦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상청도 당초 올해 단풍 절정이 지역별로 10월 20일부터 11월 5일 사이 대체로 찾아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곳곳에서 ‘지각 단풍’이 속출하고 있다. 단풍이 들어도 예년처럼 아름답지는 않다. 단풍이 들려면 기온이 낮아져야 한다. 11월 들면서 초순 기온이 최저 1~14도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를 보면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는 11월 중순일 것으로 예상된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하고 여행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 서점가는 한강의 작품을 비롯한 문학서가 불티나게 팔리며 독서의 계절을 실감케 한다. 반면 지난여름 폭염에 지친 시민들은 단풍의 계절, 가을을 학수고대하였지만 폭염이 길어진 탓에 단풍은 곱디고운 빛을 발하지 못하고 힘들게 우리 곁을 찾았다. 예년 같으면 울긋불긋 온 산하를 수놓았을 단풍 소식이 이제야 북부지역을 물들이고 남녘은 이제 시작이다. 세상의 빛깔은 때에 따라 변한다. 파란 하늘 아래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모습을 바라보며 가을이 깊어감을 실감한다. 책속에 펼쳐진 사진 속 가을만 즐기기엔 하늘이 너무나 맑고 푸르다. 집안을 벗어나 가을이 다 가기 전 단풍 맞으러 길 떠나보자.
가을 단풍 관광의 최적지는 역시 강원도다.
이름 난 단풍 명소도 좋고 험산준령을 지나는 고갯길에서 만나는 단풍은 자연의 경이로 느끼게 한다. 기자는 단풍 맞으러 강원도 양양의 한계령과 인제군 조침령을 거쳐 홍천의 은행나무 숲을 다녀왔다.
강원도에 접어들고 고개 입구부터 붉고 노란 단풍이 가을 햇볕을 받아 빛나고 있다. 180도로 꺾어지는 S자 굽잇길을 돌고 돌아가며 만나는 울긋불긋 단풍은 가을을 실감나게 한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잊어버리라”는 노 가수의 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한계령 정상에서 ‘이 산 저 산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은 어김없이 한계령의 단풍을 모두 쓸고 갔다. 정상에서 단풍을 즐기기엔 한 발 늦었다. 단풍이 늦어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단풍은 산 아래를 거쳐 이미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단풍의 남하 속도는 평균 시속 1km, 하루 20~25km씩 남쪽으로 내려간다.
한계령 주차장에서 만난 이진수(58) 씨는 “서울에서 아내와 함께 모처럼 차를 몰고 가을풍경을 찾아 나섰다”면서 “집안 일로 늘 답답해하는 아내에게 깨끗한 공기와 가을바람을 선사했더니 기분도 좋고 마음도 상쾌하다”고 말했다.
구룡령길 따라 조침령 터널 입구에서 드론을 날렸다. “산이 높고 험하여 새가 하루에 넘지 못하고 잠을 자고 넘었다”고 하는 지명의 유래처럼 굽이굽이 오르는 것이 쉽지 않다. 고개를 넘기 어려 운 때 길을 내고 터널을 뚫고 산 이쪽저쪽을 연결하였던 것처럼 단풍과 함께 얼굴을 스쳐가는 기분좋은 가을바람은 복잡한 세상의 짐을 잠시 내려놓기에 충분하다.
홍천군 내면 은행나무 숲을 찾았다. 은행나무 숲은 사유지로 10월 한 달 동안 만 일반에 무료로 개장하는데 올해는 단풍이 늦어 이번 주말일 11월 3일까지 개장한다. 아직 단풍이 한창인데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든다.
홍천 은행나무 숲은 개인이 30년 동안 가꾼 숲이다. 홍천 지역 가을을 대표하는 최고명소인 은행나무숲은 5m 간격으로 은행나무만 2,000여 그루가 심겨 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장관을 연출한다. 잠시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노란 은행잎이 비같이 흩날린다. 바로 이때가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순간이다.
경기도 안양에서 온 김 민(7)어린이는 “체험학습 신청하고 엄마 아빠와 함께 여행을 왔다”며 “계곡에서 다슬기도 잡고, 은행나무 숲에서 엄마랑 사진찍기 놀이도 하며 즐겁게 지냈다”고 말했다.
사진작가 강호성(60) 씨는 “며칠 전 기상을 보니 아침안개가 좋을 것 같아 저녁밥을 뜨는둥 마는둥 장비를 차에 싣고 인제 비밀의 정원을 향했다. 밤 늦게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진작가들이 삼각대를 촬영 포인트에 세워놓고 차에서 밤을 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면서 “이른 아침 예상대로 안개가 피어오르며 몽환적 분위기의 비밀의 정원이 눈앞에 펼쳐졌다”고 말했다.
이어 강 작가는 “역시 강원도 사계절 다양한 풍경을 우리에게 선물하지만 다양한 컬러를 선사하는 가을을 특히 좋아한다. 비밀의 정원에 이어 방태산계곡과 자작나무 숲에서도 가을을 많이 담아가지고 돌아왔다”고 흡족해했다.
다음 주중에 조금 기온이 떨어진다는 예보는 있지만 맑고 화창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며 지금이 가을나들이 하기 딱 좋은 시기이다. 연휴도 없는 11월이지만 단풍과 함께 ‘여행가는 가을’로 제 격이다. 집 인근의 작은 공원에도 이미 가을은 와 있다. 단풍 명소를 찾아 즐겨도 집 앞 공원 벤치에 앉아 쉬어도 가을은 늘 여유롭고 아름답다.
올 가을 단풍색은 조금 덜 예뻐도 가수 박강수의 노래처럼
“가을은 참 예쁘다”
‘가을은 참 예쁘다 파란 하늘이
너도 나도 하늘의 구름 같이 흐르네
조각조각 흰구름도 나를
반가워 새하얀 미소 짓고
그 소식 전해 줄 한가로운
그대 얼굴은 해바라기
나는 가을이 좋다 낙엽 밟으니
사랑하는 사람들 단풍 같이 물들어
가을은 참 예쁘다 하루 하루가
코스모스 바람을 친구라고 부르네’
강원 홍천의 은행나무숲은 가을 단풍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딱 10월 한 달만 문을 여는 곳이지만 올여름 길어진 폭염 탓에 여전히 초록 잎이 많이 남아있어서 올해는 11월3일 폐장한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강호성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