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적인 가운데, 트럼프 체제에서의 글로벌 통상 기조 및 산업 정책에 관심이 모인다.
7일 경제계에 따르면, 트럼프 체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기조는 미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다. 트럼프는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온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문제를 제기하며 시장경제와 자유무역 대신 관세 등을 적용, 보호무역주의를 주창해왔다. 또, 그간 공공재로 여겨졌던 국제안보에 대해 가격을 매기면서 새로운 국제질서를 구축했다.
우선 트럼프 체제의 재집권으로 곧 미·중 무역전쟁이 또다시 발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의 대(對)중국 정책은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제품 범위를 늘려 수입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전략적 디커플링(Strategic De-coupling)’으로, 바이든 정부보다 더 높은 약 60%대 관세를 중국에 부과하고 중국의 최혜국대우 지위를 철회해 상품뿐만 아니라 금융투자·지식재산 등 중국과의 전반적인 교류 범위와 수준 자체를 축소·단절할 전망이다.
송원근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9월10일 ‘쿠키뉴스 산업포럼’ 당시 “미국의 강력한 중국 제재와 EU(유럽연합) CBAM(탄소국경조정제도) 등 정책으로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이 제외된다면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 산업계에 추가적인 자원개발 및 투자를 위한 국제협력, 자원 재활용 촉진을 위한 정책적 지원 등이 필요하다”면서 “중국 배제에 따른 미국 및 유럽 시장에서의 수출·투자 확대가 기대되기도 하지만, 공급망 재편에 따른 리스크 증가, 탈탄소화에 따른 비용 증가가 전망돼 우리 입장에선 긍정적 요인과 부정적 요인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기 때문에 미국의 견제로 중국 완제품의 대미 수출이 줄면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우리나라에도 영향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트럼프가 유세기간 동안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에 10%가량의 보편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천명한 만큼, 우리 또한 대미 무역에 있어 직접적인 제약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트럼프 당선 시 보편 관세 등을 포함해 한국의 총수출액이 최대 61조7000억원가량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산업별로 살펴보면, 배터리·전기차 업계에선 트럼프 체제가 IRA(인플레이션감축법)에 따라 전기차 한 대당 최대 7500달러 지급했던 보조금을 철폐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장기적 관점에서의 판매 전략을 재정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는 지난 1일 배터리 산업의 날에서 이와 관련해 “생산자에 대한 보조금(AMPC)은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고, 소비자한테 가는 택스크레딧(세액공제)은 변동이 있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반도체 업계에선 향후 미국 관련 투자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미국 내 공장을 짓는 해외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에 따라 현재 삼성전자는 64억달러(약 8조8000억원), SK하이닉스는 최대 4억5000만달러(약 6200억원)의 보조금과 각종 세제 혜택을 받기로 돼 있는 상황인데, 트럼프의 경우 “오히려 외국기업에게 많은 관세를 부과하면 그들은 알아서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을 것”이라고 말하며 보조금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당장 보조금 백지화 등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으나, 장기 플랜 수립이 복잡해진 셈이다.
에너지 정책도 전환될 전망이다. 트럼프는 유세기간부터 파리기후협약 탈퇴, 기존 화석에너지원(석유·가스·석탄)의 활용 등을 천명해왔고, 이는 곧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며 탄소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EU와의 무역 갈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45대 대통령 재임 당시에도 유럽산 철강·알루미늄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차기 EU 통상수장 후보인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통상·경제안보 담당 집행위원 후보는 지난 4일 인사청문회에서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개편된 EU-미국 무역기술위원회를 포함해 협력 방안을 추진하겠다”면서 “동시에 분열을 일으키는(disruptive) 시나리오에 직면할 경우 우리의 이익을 위해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국의 수출 주요국인 미국과 EU의 무역 갈등은 우리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더 높다.
아울러 철강 등 기간산업 역시 에너지·자원 정책, 수출 규제와 맞물려 탄소·무역 관세 등에 대비해 공급망 재편을 이뤄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송원근 연구위원은 “트럼프 체제에서 우리 산업계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른 리스크, ESG·환경규제 강화에 따른 비용부담 증가, 원가경쟁력 저하의 문제 등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면서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대폭 지원이 한시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본부 본부장은 “향후 미국 제조와 탈중국 GVC(글로벌가치사슬) 재편이 가속화되며 친환경정책의 속도 조절이 있을 것이고, 대미 투자 인센티브도 바뀔 것”이라며 “한국 산업이 맡고 있는 장점을 보완하면서 품질 비용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