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계획이 있었구나” 대출 아꼈다 둔촌주공에 연 은행들

“다 계획이 있었구나” 대출 아꼈다 둔촌주공에 연 은행들

대출 셧다운한 은행
둔촌주공 잔금대출에는 시동
“이러려고 줄였나” 허탈한 목소리
은행들 “놓치기 어려운 시장”

기사승인 2024-11-09 06:05:04
지난달 25일 열린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 포레온’ 점등식. 사진=곽경근 대기자

은행들이 비대면 대출 문까지 걸어 잠그며 가계대출 총량 줄이기에 여념이 없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으로 불리는 1만2000여 가구의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잔금대출에는 예외를 적용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지난 5일 공지를 통해 비대면을 통한 모든 가계대출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한시적인 조치긴 하지만 기한을 따로 명시하지 않았다. 우리은행도 5일부터 비대면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상품 판매를 한 달간 중단하기로 했다. 우리은행은 이에 앞서 지난달 30일부터는 비대면 채널을 통한 일부 신용대출 상품 판매도 멈췄다. IBK기업은행은 지난달 29일부터 비대면 대출 상품 세 가지의 신규 판매를 중단했다.

뿐만 아니다. 은행들은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 카드도 꺼내들었다. 중도상환 수수료 또는 해약금은 대출 만기일 전 대출금을 상환할 경우 은행이 고객에게 물리는 비용이다. 신규 대출 취급을 막기에서 더 나아가, 기존 차주의 상환을 유도해 대출 잔액 자체를 줄이겠다는 의도다.

은행들의 이같은 노력은 연초 제출한 가계대출 목표치를 맞춰야 한다는 당국 요구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기존에 제출한 연간 목표액을 과도하게 초과해 대출한 은행에는 내년도 대출 한도를 줄이는 패널티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미 지난 8월 기준 5대 시중은행 중 4개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연초 계획 대비 150.3%에 달했다. 

반면 이달 말 첫 입주가 시작되는 둔촌주공 잔금대출은 너나할 것 없이 나서는 분위기다. 둔촌주공 입주자는 분양대금 중 중도금대출을 상환하고 입주 지정일에 나머지 잔금 20%를 납부해야 한다. 중도금대출에 참여했던 은행이 잔금대출까지 가져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5대 시중은행 중에서는 신한은행을 빼고 4곳이 중도금대출에 참여했다. 

KB국민은행이 잔금대출 첫 스타트를 끊었다. 국민은행은 최근 둔촌주공 입주 예정자에게 연 4.8% 수준(5년 고정형 기준)으로 잔금 대출을 시작했다. 단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잔금대출 규모를 3000억원로 제한했다. 우리은행도 잔금대출에 나설 계획이고, 신한과 하나, 농협은 아직 검토 중이다.

이미 대출을 시작한 상호금융에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서울강동농협은 8일 연 4.5%(5년 고정형 기준)와 연 4.9%(변동금리 기준)을 1차 접수를 시작했다. 강동송파새마을금고는 1차 한도가 모두 소진돼, 한도를 추가해 2차 접수를 받고 있는 중이다. 대출 금리 하한선 연 4.3% 수준이다. 

기존 행보와 역행하는 은행권 움직임에 특정 단지에 대한 특혜라며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일반 금융소비자들은 스트레스 DSR 2단계 도입, 조건부 전세대출 제한과 내달 축소되는 디딤돌 대출 한도 등 전방위적 가계대출 조이기로 이미 불만이 쌓인 상황이다. 상호금융, 보험사, 카드사 등 대출이 나오는 제2금융권, 3금융권으로 내몰리는 ‘대출 난민’도 늘어나고 있다. 금융소비자 사이에서는 “일반인은 대출 안 해주려고 별짓을 다하더니 결국 이게 목적이었다”, “둔촌주공은 풀어줄 줄 알았지만 이렇게 노골적일 줄은 몰랐다“며 허탈한 목소리가 잇따른다. 

은행권은 둔촌주공을 두고 놓치기 어려운 시장이라고 말한다. 담보가 확실하다는 점은 둘째치고, 일단 잔금대출부터 시작해 수신, 신탁, 카드 고객으로 이어지는 미래 고객을 다수 유치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다른 고객의 어려움이 없게 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형평성 논란이 이해 간다”며 “하지만 은행도 영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둔촌주공은 중개인, 시행사, 건설사 등 아주 많은 이해관계가 쌓여있는 곳”이라며 “둔촌주공이 가진 상징성을 무시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둔촌주공은 ‘둔촌주공 일병 구하기’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붙을 정도로 정책 혜택을 톡톡히 봤다. 정부는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우려되자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서울 전역을 규제지역에서 해제하는 지원책을 가동했다. 국회는 수도권 분양가 상한제 대상 아파트 실거주 의무를 최초 입주 가능일부터 3년 유예하는 주택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둔촌주공에 숨통을 틔워줬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둔촌주공에 이미 나간 80% 대출을 제외하면, 남은 건 20% 약 5조원대 수준이라 가계대출 증가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시각도 나온다. 또 둔촌주공에서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발생했을때, 시장에 미칠 여파가 적지 않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 2008년 잠실 ‘엘리트’(엘스·리센츠·트리지움) 사태처럼 수분양자들이 잔금을 못 치르고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전셋값이 급락하고, 이로 인해 주변 시세도 하방압력을 받은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고도 본다. 금융당국에서는 잇단 개입이 혼선을 초래했다며 질타를 받자, 가계대출은 은행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리한 바 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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