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증권이 2000억원 규모 대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그런데 일반공모 방식을 선택한 점에서 투자심리가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자본시장 전문가들도 이번 유상증자가 본질적인 기업가치 개선을 무색하게 만드는 오판이라고 지적한다.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대차증권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3.07 급락한 7650원에 장을 마감했다. 장 초반 16.47% 내린 7350원까지 떨어지면서 52주 신저가를 경신했다.
갑작스러운 주가 하락 배경에는 유상증자 결정이 꼽힌다. 현대차증권은 지난 26일 장 마감 이후 이사회 결의로 2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공시했다. 현대차증권 유상증자는 지난 2019년 11월 제3자배정 방식으로 1036억원을 조달한 이후 약 5년 만이다.
구체적으로 신주 3012만482주를 주당 6640원(예정 발행가)에 발행할 예정이다. 현대차증권이 기존에 발행한 보통주 3171만2562주의 약 95%에 달한다. 주당 0.7주의 신주가 배정되며 주주배정 이후 미달 물량은 일반공모 청약을 진행할 방침이다.
우리사주조합원에 우선 배정된 신주 비율은 10%로 확인됐다. 현대차증권의 25.43%의 지분을 보유한 현대차도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현대차는 유상증자 참여로 보유 지분율에 따른 보통주 564만1698주를 취득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특수관계인인 현대모비스(15.71%)와 기아(4.54%)는 향후 이사회 결과를 통해 참여 여부와 청약 수량을 결정할 방침이다.
현대차증권은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을 시설자금 1000억원, 채무상환자금 225억원, 기타자금 775억원 등에 투입할 계획이다.
현대차증권 관계자는 “확보한 자금을 차세대 시스템 개발 등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사용할 예정이다”라며 “금리 인하기가 시작됨에 따라 디지털 전환 가속화, 자기자본 확대 등을 통해 리테일과 기업금융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증자 후 자기자본이 늘면 고객자산 및 담보부 대출, 자산관리계좌(CMA),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파생결합사채(DLB) 등 상품 판매를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현대차증권이 일반공모 방식으로 유상증자를 단행한다는 점이다. 기존 주주에 우선 배정한 뒤 실권주가 나오면 일반 투자자에게 공모하는 방식이다. 제3자배정 유상증자는 제3자에 신주인수권을 부여해 자금을 수혈하는 것으로 통상 단기 호재로 인식된다. 반면 일반공모 방식은 시가 대비 저렴한 신주 발행에 따른 지분가치 희석으로 주주가치도 훼손된다.
현대차증권 주주가치 희석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대차증권이 유상증자로 상장하는 신주는 기존 상장주식수의 95%가량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공시 발표 당시 현대차증권 시가총액인 2791억원의 71.65%에 달하는 높은 비중을 지녔다는 점도 주주가치 희석 우려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최대주주인 현대차 참여와 특수관계인들의 향후 결정이 일부 호재로 작용할 수 있으나 대규모 신주 물량을 고려하면 주주들의 원성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등 특수관계인과 우리사주 지분을 모두 합해도 유상증자 규모 절반 가량에 그쳐서다.
올해 유상증자를 단행한 증권사들 가운데 일반공모 방식을 택한 곳은 현대차증권이 유일하다. 유상증자 공시를 냈던 LS증권과 대신증권은 모두 일반공모가 아닌 제3자배정증자 방식을 선택했다.
일례로 대신증권은 지난 3월21일 제3자배정 방식으로 상환전환우선주(RCPS) 437만2618주를 발행해 운영자금 2300억원을 조달하는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당시 대신증권 측은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특히 현 주주들의 가치 훼손 없이 자본을 늘렸다”고 강조했다. RCPS는 특정 조건에서만 보통주로 전환되기 때문에 기존 주주 지분 가치 희석을 최소화하면서 자본을 확충하는 방법으로 알려졌다.
투자업계에서는 현대차증권의 유상증자 발표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있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증권사가 이렇게 대규모로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진행한 사례는 본 적이 없다”면서 “통상 주가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한 방식으로 자본을 늘려갔다. 상황적으로 보면 일반공모 방식을 선택한 것에 대해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모그룹인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제3자배정 유상증자 하는 방식이 제일 바람직한데, 이번 결정은 주주 입장에서나 업계 측면에서도 아쉽게 평가된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채무상환목적을 함께한 유상증자는 주주가치에 악재인 것으로 진단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보통 유상증자를 하면 주주가치가 희석되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특히 채무 상환 등 다른 목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면서 “일반적인 주주들의 쌈짓돈에서 빚을 갚는 방식인 점에서 기업 가치 제고에 도움이 안 된다. 기업의 빚을 다른 사람 돈으로 갚는 것이기 때문에 본질적인 가치 개선으로 연결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