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분의 1, 유전자가 일치하는 환자를 찾았습니다” [세포로 잇다②]

“2만분의 1, 유전자가 일치하는 환자를 찾았습니다” [세포로 잇다②]

[조혈모세포 기증 체험기]
기증, 헌혈과 비슷…채집 한달 전 건강검진
‘좋은 일’이지만…“기증자는 정보 부족”
기증 혼자 이루는 것 아냐…다수 도움 중요

기사승인 2024-12-03 06:00:10
지난해 6월 한마음혈액원 헌혈카페 수원점에서 본 조혈모세포 기증 설명서. 사진=김건주 기자

“안녕하세요. 김건주님.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입니다.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환자분을 찾았습니다. 기증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연락드렸습니다.”

“…에?”

지난 7월 기사 마감시간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적잖이 당황한 기자의 머릿속에 곧 한 가지 장면이 스쳤다. 지난해 헌혈 기관에서 작성한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 신청서’다. 무심코 읽은 신청서에는 ‘혈액암 환자는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으면 완치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당시 담당자는 “매칭 확률은 2만 분의 1정도다. 수년이 걸릴 수도 있고, 평생 연락이 오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되면 좋은 거지’라는 생각으로 신청서를 작성했다. 예상과 달리 1년여 만에 연락을 받았다.

연락을 준 조혈모세포은행 코디네이터(간호사)는 “기증은 전적으로 자유의사”라며 절차를 설명했다. 며칠 고민 후 “신청했으니 일단 하겠다”고 답했다. 약 한달 후, 조혈모세포은행에 방문했다. 세부 유전자검사를 위해서다. 조혈모세포 기증은 유전자 조직적합성항원(HLA)이 50%를 넘어야 한다. 관계자는 “부모·자식 간 5% 내외, 형제·자매 간 25% 내외 정도 일치한다”고 말했다. 2주 후 검사 결과가 나왔다.

“조회 결과, 환자와 김건주님의 유전자는 95%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기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기증, 헌혈과 비슷…채집 한달 전 건강검진

기자가 백혈구촉진제 투약 후 조혈모세포은행 코디네이터의 안내를 받아 여의도성모병원 병실로 들어가고 있다. 영상=정혜미 PD

‘말초혈 조혈모세포’ 기증스케줄은 △건강검진 △백혈구촉진제 투여 △입원·채취·퇴원 △회복검사 순이다.
기증 한 달 전, 조혈모세포은행 관계자와 동행해 여의도성모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8시간 공복을 유지하고 혈액·소변·심전도검사, 흉부엑스레이 촬영 등 4개 검사를 마쳤다. 5mL 바이알(용기) 18개 분량을 채혈했다. 이날 말초혈 조혈모세포 채취 동의서를 함께 작성했다. 기증을 거절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으며 순수한 인도적 차원에서 기증을 하고 환자와 만남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내용 등을 확인했다. 검진, 교수 진료, 동의서 작성, 스케줄 설명 등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됐다.

조혈모세포 채취 3일 전부터는 백혈구 수치를 올리는 ‘백혈구촉진제’를 투약했다. 3일간 하루 한 번씩 집 근처 병원에 방문했다. 조혈모세포은행에서 준 촉진제를 가져가 “외부약제를 맞으러 왔다”고 말했다. 촉진제를 투약 받으면 어지러움·메스꺼움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투약 후 종종 어지러움과 허리가 뻐근한 느낌을 받았다. 이 때는 처방받은 타이레놀을 복용했다.


조혈모세포 기증을 위해 입원한 병원 1인실 모습. 환자복과 설문조사서, 생활용품 등이 구비돼 있다. 사진=김건주 기자 

촉진제 투약 마지막 날 오후, 여의도성모병원으로 입원 수속을 밟았다. 조혈모세포은행 관계자를 만나 챙겨온 개인용품을 들고 병실로 이동했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1인실을 배정받았다. 병실에는 환자복과 세면도구·슬리퍼 등 일상용품과 음료·간식거리 등이 준비돼 있었다. 환복을 하고 병실 간호사에게 전달받은 태블릿으로 입원과정 설명 영상을 시청했다.

조혈모세포 채취 당일 아침, 병실 침상에 누워 수술실로 이동했다. 곧 마취를 하고 쇄골 부근에 카테터(의료용 튜브)를 삽입했다. 일반적으로 양쪽 팔에 바늘을 꽂아 이식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혈관이 잘 보이지 않으면 쇄골 부근에 관을 삽입해 조혈모세포를 채집한다. 기자는 혈관이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아 삽관을 했다. 체감상 5분이 걸리지 않았다. 통증은 느끼지 못했다. 병실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하고 채집 안내를 받았다.

쇄골과 목 사이에 삽관한 모습. 기증시간 동안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영상=정혜미 PD

잠시 후 휠체어를 타고 림프종센터로 이동했다. 간호사는 쇄골에 연결된 카테터에 옆 기계를 연결했다. 과정은 헌혈과 비슷했다. 통증은 없었다. 기증 시간은 약 5시간 정도였다. 팔에 바늘을 꽂지 않아 움직이는 게 수월했다. 챙겨간 책 한 권을 절반 조금 넘게 읽었을 즈음 조혈모세포 채집은 끝났다. 채집량이 부족하면 다음날 한 번 더 채집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날 저녁 채집량이 충분하다는 말을 듣고 삽입한 관은 제거했다.

다음날 퇴원까지 채혈 등을 하며 건강을 체크했다. 조혈모세포은행 관계자에게 유급휴가 신청을 위한 진단서·입퇴원확인서·진료비계산서와 경비 보상 안내를 받고 병원을 나왔다. 퇴원 후에는 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2주 후 병원에 방문해 회복검사를 했다. 몸에 이상이 없다는 결과와 함께 “새 생명을 선물해 주신 기증자에게 감사드린다”는 말을 듣고 기증을 마무리했다.

◇ ‘좋은 일’이지만…“기증자는 정보 부족”

기자가 말초혈 조혈모세포 채취 동의서에 서명했다. 인도적 차원에서 기증을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진=김건주 기자

조혈모세포 기증희망자 중에는 연락받아도 거절하는 경우가 다수라는 설명을 들었다. 기자도 도중에 기증 의사를 철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 복잡한 유급휴가 사용 절차 때문이다.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장기이식법)’에 따르면 기증 기간 공무원은 병가 처리, 일반근로자는 유급 휴가를 주도록 규정돼 있다. 다만 알아보는 과정이 번거로워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기증자의 경우 회사에서 해주지 않아 본인의 휴가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연결된 카테터를 통해 조혈모세포 이식 준비를 하고 있다. 영상=정혜미 PD

두 번째, 팔이 아닌 쇄골과 목 사이에 삽관을 해야 한다고 들었을 때다. 기증 전 양 팔을 통해 채집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건강검진 당시 팔에 혈관이 잘 보이지 않아 쇄골 부근에 삽관을 해야 한다는 말을 전달받았다. 흉터가 남으면 조혈모세포은행에서 치료비용까지 지원한다고 했지만, 사전 정보가 적어 두려움과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세 번째, 오해를 일으키는 온라인 상의 글을 먼저 접해서다. 기자가 인터넷 검색창에 ‘조혈모세포’를 입력하자 연관검색어에 ‘기증후회·부작용’ 등이 떠올랐다. 예를 들면 ‘병원에서 홀대한다’, ‘매우 아프다’ 등의 내용이다. 조혈모세포 기증을 엉덩이뼈에서 골수를 뽑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가족들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한다.

이처럼 기증 희망자에게는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때문에 Q&A나 관련 영상 등 사전 정보 접근성을 늘려 기증자를 안심시키고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제도적인 변화도 필요하다. 유소영 차의과대 교수 등은 성인간호학회 ‘조혈모세포 기증자 및 기증 기관 전문가들의 기증 관련 경험: 포커스그룹 인터뷰’ 보고서를 통해 “기증자의 개인휴가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기증 관련 기관이 아닌 기증자가 직접 학교나 직장으로 휴가지원 서류를 제출하는 형태 등 어려움이 산재해있어 기증자들의 불편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변화가 요구된다”고 분석했다.


◇ 기증 혼자 이루는 것 아냐…다수 도움 중요

기자의 신분증에 조혈모세포 기증자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김건주 기자

조혈모세포 기증은 주변의 격려도 필요하다. 기자도 기증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다. 먼저 첫 연락부터 기증 후 회복검사까지 조혈모세포은행 코디네이터의 안내와 도움을 받았다. 특히 기자가 기증 전 다른 병원에서 주사를 맞거나 약을 처방받을 경우, 코디네이터는 주말에도 수차례 답변을 해주는 등 기증자 스케줄에 맞춰줬다. 기증 과정 중간중간 찾아와 몸은 괜찮은지 묻기도 했다.

회사에도 유급휴가 사용 도움을 받았다. 경영지원팀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인데 가능하면 돕겠다’며 행정절차를 도왔다. 기자가 백혈구 촉진제를 맞을 때 외부약제를 투약해 준 의사는 “좋은 일 하시는 거다”라며 격려해주기도 했다. 직장동료들도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며 신경써줬다. 이 같은 부분에서 기증 의지를 확실히 다잡을 수 있었다.

기자는 상대방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는 기자의 유전자를 갖고 새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가족들에게도 웃음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가능하다면 기사를 읽은 독자들에게 조혈모세포 기증 신청을 권하고 싶다. 기증 희망자가 많아지는 만큼 제도적인 변화도 따라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혈액암 환자에게 가능성을 열어줄 수도 있다. 가능성이 없는 것과 열려 있는 것은 다르다. 신청을 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 희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김건주 기자
gun@kukinews.com
김건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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