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진 퇴~진♪ 윤석열 퇴~진♪” 세대 불문 최소 10만명(경찰 추산)이 즐긴 콘서트가 매일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열리고 있다. 실상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지만, 각양각색 응원봉에 간식·핫팩 무료나눔까지 콘서트 현장과 똑 닮았다. K팝 팬덤을 이끄는 2030여성이 대거 참여해 집회 문화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흘러나오는 노래도 심상치 않다. 블랙핑크 로제 ‘아파트’, 에스파 ‘위플래시’ 등 음악방송에서나 들을 법한 아이돌 음악에 집회 참가자들은 리듬을 타며 구호를 신나게 외친다. 현장에서 민중가요와 대중가요의 흐려진 경계를 목도한 시민들은 ‘이게 진정한 연대 아니겠냐’고 입을 모았다.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난 10일에도 여의도 국회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날은 어둑해졌지만 여러 응원봉이 함께 내는 빛에 먼발치까지 환히 보였다. 이날 역시 2030여성이 가장 눈에 띄었다. 다만 같은 날 집회에서는 민중가요 ‘광야에서’, 김수철 ‘젊은 그대’ 등을 배워보는 시간도 주어졌다. 곳곳에서 중년 남성들의 노래가 터져 나왔고, 연령대가 낮은 참가자들은 응원봉을 흔들며 낯선 가사와 멜로디를 열심히 숙지했다. ‘위플래시’를 시작으로 노래를 부르며 국민의힘 당사로 행진할 때는 또 분위기가 달라졌다.
‘연대’ 그 자체였다. 일각에서는 변화한 집회 방식을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모든 세대를 아우르긴 힘들지 않을까’라고 우려했지만, 실제 참가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60대 여성 김 모 씨는 “탄핵만 되면 무슨 노래가 나오든 상관없다”고 말하는가 하면, 60대 남성 정 모 씨는 “아는 노래는 아니지만 함께 현장에 있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젊은 여자 분들이 많이 나온 것을 보고 희망을 느꼈다”며 미소를 띠었다. 70대 남성 홍 모 씨도 “이렇게 다양한 연령대의 선호에 맞춰 함께 연대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10~30대 시민들은 집회에서 흘러나오는 K팝 덕분에 민중가요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든 모양새였다. 30대 여성 고 모 씨는 “K팝과 민중가요가 번갈아 나오니까 세대를 불문하고 하나가 되는 느낌이다.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세대 통합의 장이 된 것 같다”고 밝혔다. 10대 여성 이 모 씨는 “집회는 진지하고 무섭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K팝을 들으니까 마치 축제 같다. 이런 분위기니까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30대 여성 박 모 씨는 “집회에 나와야 할 연령층이 나왔고, 그 연령층에 맞게 집회 문화가 바뀌고 있는 거다. 최근 선거에서도 2030여성의 표심이 중요하지 않았나. 2030여성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변화”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처럼 K팝은 민중가요의 외연을 확장하며, 2030여성을 중심으로 한 집회 참가자들의 결속력을 더더욱 높이고 있다. 박희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가요라 함은 그 시대 대중이 소비하는 음악을 뜻한다. 따라서 민중가요 또한 현재 정치적으로 가장 열띤 목소리를 내는 세대의 가치와 정서가 담긴 곡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지금 시위 주체가 된 20대, 30대, 나아가 40대 초반 여성들이 소비하는 음악이 아이돌 K팝인데, 많은 K팝 곡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희망’과 ‘열정’이라는 키워드”라며 “전통적인 민중가요 키워드가 ‘투쟁’에 집중돼 있었다면, 2024년 민중가요 플레이리스트는 ‘성장’, ‘청춘’ 등 많은 수의 젊은 여성들이 공감하는 밝고 명랑한, 동시에 서정적인 키워드들로 구성돼 있다”고 현 민중가요 트렌드에 주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