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처단’이 언급된 계엄사령부 포고령을 두고 의료계가 들끓고 있다. 불씨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동참하지 않은 의사 출신 여당 의원들에 옮겨붙었다. 의료계 일각에선 이들을 대학 동문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믿고 지지한 의사 동료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규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한 의사 출신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해 의사들이 쓴소리를 내고 있다. 한지아·인요한 의원은 김건희 여사 특검법 투표 이후 자리를 지켰지만, 특검법 부결 결정을 지켜본 뒤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의사 출신 여당 의원 중에서 탄핵소추안 투표에 참여한 사람은 안철수 의원 한 명뿐이었다. 서명옥 의원은 일찌감치 자리를 떴다. 한 의원은 가톨릭의대 재활의학과 전문의 출신이다. 인 의원은 연세의대 가정의학과에서 교수로 있었다. 서 의원은 경북의대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지냈다.
의료계 일각은 전공의를 정조준 한 계엄포고령을 보고도 같은 의사로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여당 의원들을 짚었다.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발표된 계엄사령부 포고령에는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해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문구가 명시됐다.
김준성 가톨릭의대 재활의학과 교수(성빈센트병원)는 8일 전국의과대학 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가 주최한 ‘의료탄압 규탄 윤석열 퇴진 촉구’ 시국선언 대회에 참석해 “창피한 얘기지만 한지아 의원이 가톨릭의대 재활의학과 출신”이라며 의료계 전체가 탄핵 불참 의원에 대한 제명 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한 의원은 대통령 탄핵 찬성도 아니고 탄핵 투표에도 참여하지 않았다”며 “이번 기회에 대한의사협회(의협)나 대학, 동창회, 동문회, 학회 등에서 한 의원을 제외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의대뿐만 아니라 탄핵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모든 (의사 출신) 분들은 (의료계에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의료계 모든 커뮤니티에서 제외시키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면서 “국회의원들의 그 한 줌의 권한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다. 이들이 본인의 잘못을 알면 탄핵 대열에 참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톨릭중앙의료원 전공의를 지낸 류옥하다씨는 한 의원에게 기대감을 갖고 있었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대응 부분에서 실망했다고 털어놨다. 류옥씨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한 의원은 그동안 국정감사에서 좋은 실증자료를 많이 제공해왔으며,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온 사람 중 한 명이었다”라며 “지난 3일 계엄을 해제하는 긴박한 상황에도 추경호 원내대표의 지시를 거부하고 본회의장에서 투표한 것도 인상 깊었다. 그러나 그 뒤에 보여준 모습은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가톨릭중앙의료원에서 잠시나마 수련 받았던 전공의로서 가톨릭의대를 나온 한 의원이 부끄럽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의사라면 윤 대통령이 통치 능력은커녕 판단 능력이 부재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윤석열의 내란을 곁에서 지켜보고도 탄핵 절차에서 표결하지 않은 여당의 의사 의원들은 최소한의 전문가 윤리를 상실한 셈이다”라고 주장했다.
의사 출신 의원들을 향한 의료계의 분노는 이해하지만 오는 14일 오후 5시로 예정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2차 표결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다. 가톨릭의대 외과 교수(여의도성모병원)인 김성근 전국의대교수협의회 대변인은 “‘전공의를 처단한다’고까지 했는데 (탄핵안 부결) 당론을 따랐어야 했는지 의문을 갖는 의사들이 있다”면서도 “당시 당론으로 정해진 상황에서 움직이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 주 2차 탄핵 표결이 있으니 지켜볼 것”이라고 전했다.
의료계의 분노는 의사 출신 여당 의원들에게 가졌던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탄핵 투표 불참은 그동안 이들이 보여준 행보와 배치되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한 의원은 9월13일 국회소통관 브리핑에서 “의료계가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 국민의힘은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의료공백에 대한 국민 불안을 해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등 의정갈등 사태 해결을 위해 목소리를 내왔다. 인 의원은 6월17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집단 휴진을 강행했을 때 직접 서울대병원을 찾아 의료계의 목소리를 듣고 “환자 진료에 차질이 없도록 당에서 잘 챙기겠다”고 전하는 등 국민 불안을 덜기 위해 노력했다. 서 의원 역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21대 국회의원을 지낸 신현영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계엄 사태로 인해 혼란스러운 정국 상황에서 의사 출신 여당 의원들은 자신이 왜 정치를 하게 됐는지 되돌아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신 교수는 “국민이 뽑은 선출직으로서 올바른 태도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길 바란다”며 “지금 이 순간에 중요한 건 본인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판단이 아닌 대한민국 정치를 어떻게 올바르게 세울지 생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의료대란을 지금까지 끌고 오면서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책임이 여당 의사 출신 의원들에게 분명히 있다. 국민들의 원성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표결에 참여하지 않는 건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면서 “(2차 표결에도 나서지 않는다면) 앞으로 차디찬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야합할 거라면 정치가 아닌, 환자를 마주하는 게 더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