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 이후 정국이 탄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정치 불확실성에 관망세를 보였던 투자자금이 어디로 ‘머니무브’ 할지 관심이 쏠린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총 616조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3일과 비교해 7거래일 만에 16조원이 증가한 수치다. 최근 주요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은 2달째 하락 추세였다. 지난 9월 말 623조3173억원이었던 요구불예금 잔액은 10월 말 613조3937억원에서 지난달 말 608조2330억원까지 감소했었다.
요구불예금은 월급통장, 연금통장 등으로 활용하는 수시 입출금 예금을 말한다. 언제든지 자유롭게 돈을 넣었다 뺄 수 있기 때문에 금리가 0.1%대로 매우 낮다. 이자가 없어 현금과 마찬가지인 요구불예금이 늘어난다는 것은 현재 시장이 불안하다고 느끼는 기업과 개인이 많다는 의미다.
투자자들의 자금도 대기 상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은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직전인 지난 3일 83조8355억원에서 13일 86조5344억원으로 2조6989억원 증가했다.
CMA는 증권사가 고객의 자금을 받아 기업어음(CP), 국공채, 양도성예금증서(CD) 등 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하고 발생한 수익을 고객에게 지급하는 상품이다. CMA 역시 통상 뚜렷한 사용처를 정하지 못할 때 자금을 보호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투자자 예탁금도 같은기간 49조8987억원에서 52조6621억원으로 2조7634억원 증가했다. 투자자 예탁금 역시 증시 대기성 자금에 속한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이어지자 안전한 곳으로 자금을 옮겨두는 이들이 늘어난 것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지난 14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앞으로의 자금 흐름이 주목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최근 한국의 정치 상황이 ‘수습 절차’ 측면에서의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며 “여·야·정 비상경제 협의체를 통해 앞으로도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와 정부가 협력해 주요 경제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권에서는 잠든 돈이 주로 주식시장·가상자산·펀드 등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특히 수신금리가 2개월 연속 떨어진 기준금리로 인해 급격히 하락하는 추세다 보니, 예적금 상품의 매력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요 정기예금 상품 최고금리(12개월)는 16일 기준 최저 3.15%에서 3.22%로 집계됐다. 이달 초 3.20~3.40%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약 2주일 사이 상단이 0.18%p 떨어졌다.
문제는 국내 투자시장은 여전히 회복세에 그치고 있는 반면, 미국 증권시장과 가상자산 시장 상승세가 매섭다는 점이다. 3일 종가 기준 2500.10이던 코스피 지수는 계엄령 직후 9일 2360.58로 5.58%까지 내려앉았다. 이후 점차 회복세를 보이며 2494.46(13일 기준)로 계엄령 이전까지 따라왔다.
반면 가상자산 대장주 비트코인 가격은 16일 기준 10만4000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다. 나스닥 종합지수는 지난주 사상 처음으로 2만 선을 돌파했다. 투자 자금의 해외 이탈 가속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급하게 시장금리 인하분을 반영하면서 수신금리를 낮추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11월 기준금리 인하를 예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예적금 상품이 아닌 재테크 시장으로 자금이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