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한 권한대행은 19일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어느 때보다 정부와 여야 간 협치가 절실한 상황에서 국회에 6개 법안 재의를 요구하게 돼 마음이 매우 무겁다”고 말했다. 6개 법안에는 농어업재해보험법 등 농업 4법이 포함됐다.
지난달 28일 국회가 가결한 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은 재해보험사업자가 보험료율을 산정할 때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에 따른 할증을 적용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농어업인이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할증할 수 있다.
즉, 농어업재해보험 가입자가 자연재해로 피해를 보고 고액의 보험금을 지급받았더라도, 피해 경감 노력을 했다면 보험료를 올리지 않는 것이 골자다.
개정안은 기후변화로 농어업 재해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재해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할 의도로 마련됐다. 지난해 기준 농어업재해보험 가입률은 전체 농가의 52.1%, 보험 가입 경지면적은 전체의 42.1%에 그쳤다. 이에 보험료 부담을 덜어줘 가입률을 높일 조항을 개설하려고 한 것이다.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관계자는 19일 통화에서 “농업인 입장에서 자연재해는 본인이 만들어낸 귀책 사유가 아니다 보니 할증에 부담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대행은 “(개정안이)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발생해 농어업인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더라도 보험료율을 할증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면서 “민간 보험사들이 영세한 농어업인들의 보험 가입을 오히려 꺼리게 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농림축산식품부는 가결 전 법제사법위원회에 “보험료가 재해위험도(사고 발생 확률)에 비례해야 한다는 보험의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면서 “재해위험도에 따라 보험료율이 산정되는 보험임에도 재해 피해에 따른 보험료율 할증을 금지해 상품으로 운영이 불가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농업인의 피해경감 노력을 확인해서 할증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재해위험도가 다른 모든 가입자에게 동일한 기본요율이 적용되어 가입자 간 형평성도 저해된다”고 주장했다. 손해가 큰 농가에 할증하지 않으면 모든 가입자의 보험료가 인상돼 손해가 적은 농가가 오히려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한 권한대행의 재의요구권 행사로 농어업재해보험법을 포함한 6개 법안은 국회로 돌아가게 됐다. 이후 재표결을 통과하지 못하면 법안은 폐기된다.
농촌연합회 관계자는 “(여야 모두) 목표는 농가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인데 의견이 합치되지 않아 21대 국회에 이어 도돌이표가 되는 것 같다”며 “좋은 정책이 마련돼도 예산이 없으면 무용지물인데, 정책에 더해 예산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