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배려석이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배려석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임산부를 위해 비워두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과, 임산부 탑승 시 양보하면 충분하다는 입장이 대립하며 의견 충돌을 빚고 있다. 특히 혼잡한 시간대 비어 있는 임산부 배려석은 사회적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제보자에 따르면 지난 18일 오후 7시쯤 서울 지하철 신림선 지하철 내부에서 임산부 배려석을 두고 승객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제보 영상을 보면 퇴근길 혼잡한 지하철 안에서 한 중년 여성이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승객은 “임산부도 아니면서 배려석에 왜 앉냐”고 소리쳤다고, 해당 여성은 “몸이 아파서 앉았다”고 맞받아쳤다. 이렇게 시작된 말다툼은 욕설과 고성, 몸싸움으로까지 이어졌다.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갈등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임산부 배려석 관련 민원은 지난달 30일 기준 5781건이 접수됐다. 2022년 7334건, 지난해 7086건이 접수된 것과 비교하면, 민원이 줄고 있지만, 여전히 매년 수천 건, 하루 평균 17건 이상에 달하는 상황이다.
임산부 배려석은 서울시가 임신·출산을 장려하고 임산부 안전과 배려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2013년 처음 도입한 제도지만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란 지적이 나온다. 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 좌석 중 일부를 핑크색으로 눈에 띄게 지정했는데도, 그뿐이다.
실제 기자가 19일 서울 지하철 5호선을 이용하며 임산부 배려석을 살펴본 결과, 대부분 일반 승객이 차지하고 있었다. 5칸 10개 좌석 중 비어 있는 칸은 1개에 불과했다. 임산부 뱃지를 가방에 매단 여성 1명을 제외하고 8명은 중년 여성과 남성이었다.
임산부 배려석을 두고 운영 방식을 ‘인증 기반’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한 시민은 지난달 서울시 정책 제안 플랫폼 ‘상상대로 서울’에 “임산부 배지, 휴대전화 앱 등 임산부임을 인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태그한 후 좌석이 자동으로 활성화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을 제안했다.
그는 “작성자는 “실제로 비임산부 승객들이 임산부 배려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임산부들이 배려석에 대해 다른 승객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어 배려석 취지에 맞다”고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이 제안은 이틀 만에 공감수 50개를 넘길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30일간 50명 이상이 공감하면 서울시 담당 부서는 반영 여부를 검토한 뒤 답변해야 한다.
현재 부산 지하철의 임산부 배려석은 임산부가 휴대전화 앱을 작동하면 “자리를 양보해달라”는 음성 안내와 함께 좌석에 설치된 조명이 깜빡인다. 배려석에 앉은 일반 시민이 임산부임을 알아차리고 자리를 비켜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서울 지하철에서 인증 기반의 장치 도입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타 기관의 임산부 배려석 인위적 장치(핑크라이트 등) 도입을 검토한 바 있으나 비용 대비 운영 효과에 대한 자료가 부족했다”며 “교통약자 배려석 형태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강제성 의미로 비칠 수 있어 도입에 신중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어 “부산교통공사와 비교해 서울은 수송 인원 및 혼잡도가 높은 만큼 설치비 및 유지비용이 걸림돌이 된다”며 “공사는 임산부 배려석에 대해 캠페인 및 홍보를 통한 시민 인식 개선이 되도록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신 임산부 배려석 비워두기를 권장, 홍보하고 있다. 또한 매년 자체 설문조사를 통해 시민 의견을 모니터링 중이다. 서교공 관계자는 “올해 조사 결과 가장 요청이 많았던 것은 ‘임산부 배려 문화 홍보 강화’였다”며 “SNS 챌린지, 임산부 배려 홍보 배너 설치 상시 홍보 등 올해 다양한 신규 홍보 노력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