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달 ‘세계 최초’ 타이틀을 내걸고 청정수소 입찰시장의 문을 열었지만 단 한 곳만 조건에 부합해 낙찰되면서 사실상 흥행에 실패했다. 발전단가·정부 지원책 등 기업에 있어 경제성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8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전력당국은 이번 청정수소 입찰시장에서의 보완점을 토대로 제도 개선을 검토 중이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환율 변동성, 이용률 등 발전사업자에 부담되는 리스크에 대한 개선 방안을 검토해 다음에 있을 입찰시장 설계에 반영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일 정부는 해당 입찰을 통해 청정수소발전으로 총 650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전기를 확보해 발전사업자들과 오는 2028년부터 15년 장기계약을 체결할 계획이었으나, 남동발전, 중부발전, 남부발전, 동서발전, SK이노베이션 E&S 등 입찰에 참여한 5개사 중 남부발전(750GWh)만 최종 사업자로 선정돼 전체 물량의 11.5%를 충족하는 데 그쳤다.
수소는 생산 방식에 따라 그레이수소, 블루수소, 그린수소로 나뉜다. 그레이수소는 LNG(액화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에서 생산하며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CO2)를 배출하는데,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수소 생산 방식이다. 블루수소는 화석연료를 이용하되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S) 기술로 CO2를 처리한 수소이며, 그린수소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토대로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얻어 CO2 배출이 없다.
청정수소는 수소 1kg을 생산할 때 온실가스 배출량이 4kg 이하인 수소를 말한다. 현재는 블루수소와 그린수소가 이에 해당한다. 특히 이번 입찰시장에선 LNG-수소 혼소 발전과 석탄-암모니아 혼소 발전설비도 허용됐다. 아직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청정수소 시장 특성상, 100% 청정수소 발전(그린수소)으로 운영하기 어렵다는 여건이 고려됐다.
이처럼 이론대로라면 그린수소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친환경적이지만, 생산 단가가 매우 높다는 현실적인 문제점이 있다. 사실상 블루수소 형태의 입찰 참여가 주를 이뤘던 이번 입찰 과정에서도 결국은 높은 발전단가가 입찰사업자들의 발목을 잡았다.
입찰 과정을 지켜봐 온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입찰의 최저 입찰가가 kWh당 460~470원 사이에서 정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머지 응찰자 중에선 500원대에서 최대 600원대 중반까지 가격을 써낸 곳도 있다고 전해 들었다”면서 “인프라가 달라 단순 비교로는 무리가 있지만, 이번 최저 입찰가를 기준으로 해도 근접한 생산 형태인 LNG 발전단가(160원대)보다 2배 이상 높다”고 말했다.
낙찰사업자인 남부발전은 어떻게 최저 입찰가격을 맞출 수 있었을까. 세부 입찰 내용은 대외비이나, 업계에선 상대적으로 연료비가 낮은 석탄-암모니아 혼소 방식을 토대로 국책사업과 연계해 관련 인프라를 사실상 확보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최종 사업자로 선정된 남부발전은 기존 석탄화력발전소인 삼척그린파워 1호기에 청정 암모니아를 20% 혼합해 연소하는 혼소발전을 2028년부터 진행할 예정이다. 청정 암모니아는 삼성물산을 통해 중동에서 들여오게 되는데, 이미 지난해 4월 삼성물산과 삼척그린파워 인근에 3만톤급 암모니아 저장탱크 1호기와 하역·운송 설비 공사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 국책사업으로서 총사업비 400억원 중 240억원을 보조받았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석탄-암모니아 혼소 발전이 LNG-수소 혼소 발전보다 LCOE(균등화발전비용)의 관점에서 유리한 부분이 있는 데다, 남부발전은 오래 전부터 ‘석탄발전의 전환’이라는 명목 하에 준비를 해왔을 것”이라며 “다만 정부가 청정수소 발전설비의 범위를 지정할 정도로 관련 시장이 초기 상태인 점을 감안한다면, 연료비에 기인한 입찰가격 경쟁만 놓고 볼 것이 아니라 초기 응찰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입찰 과정에서는 암모니아 등 원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사업 특성에도 정부가 15년 고정가격계약을 체결해 환율 변동 부담이 입찰사업자에게 전가된 점, 발전 이용률을 보장하지 않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용률을 보장받지 못하면 계약 기간인 15년 동안의 정확한 수소 수요량을 산출하기 어려워 연료 공급 가격 협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고, 전력망 부족에 따른 발전소 중단 등 변수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첫 입찰인 만큼 사업자들이 전력망 접속·인프라 등 제반 여건을 고려해 신중하게 입찰에 참가한 것으로 보이고, 매년 입찰시장이 개설되고 투찰 사례가 누적되면 참여도도 높아질 것”이라며 “관계 전문가 및 업계와 소통하면서 온실가스 감축 및 경제성 있는 청정수소 조달 등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