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가 글로벌 빅테크의 과징금 처분 불복 소송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향후 예정돼 있는 개인정보위와 기업의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부장판사 고은설)는 23일 구글과 메타가 개인정보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소송비용도 원고가 모두 부담하게 됐다.
재판부는 플랫폼인 구글·메타 등이 타사 행태정보 수집과 관련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회원의 동의를 받을 의무 주체라고 봤다. 행태정보는 웹사이트 및 앱 방문 사용 이력, 구매·검색 이력 등 이용자의 관심과 흥미, 기호, 성향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온라인상 활동정보를 뜻한다.
재판부는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행태정보 취득 주체나 이용 목적 유무, 개인정보보호법상 처리자 개념,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와 개인정보 처리자 등의 관계를 종합하면 타사 행태정보에 대한 동의를 받아야 하는 정보통신제공자는 원고”라고 밝혔다.
또한 구글·메타 모두 이용자로부터 개인정보 수집 이용에 대한 동의를 사실상 받지 않았다고 봤다. 모호하게 고지하거나 행태정보를 은밀하게 수집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른바 ‘다크패턴’이다. 구글은 행태정보 수집·이용 동의 과정에서 ‘옵션 더보기’를 숨겨 동의를 기본값으로 설정했다. 메타는 694줄에 달하는 관련 내용을 한 화면에 5줄만 보이도록 구성해 이용자의 동의를 받았다.
과징금과 과태료의 규모는 비례 원칙에 따라 개인정보위의 처분이 적정하다고 판시됐다.
개인정보위는 지난 2022년 9월 이용자 동의 없이 행태정보를 수집해 맞춤형 광고에 활용한 혐의로 구글에 692억원, 메타에 30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구글·메타는 지난 2023년 2월 개인정보위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소송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다. 구글·메타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등 국내 굴지의 로펌을 선임했다. 당시 개인정보위에 배정된 1년치 소송 예산은 2억원뿐이었다. 지난해와 올해 소송 예산은 4억원에 그쳤다. 적은 예산으로 대형 로펌을 상대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법무부 국제법무지원과와 개인정보위에서 선임한 로펌들이 적극 대응한 끝에 승소를 이끌어냈다.
최장혁 개인정보위 부위원장은 이날 판결 후 기자들과 만나 “오늘 판결에는 국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대한민국 국민의 개인정보를 이용할 때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생각한다”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소송을 수행해주신 법무부 국제 법무지원과와 우리 변호사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개인정보위는 이번 소송을 디딤돌로 삼아 다른 행정처분 불복 소송에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늘어나면서 기업에 대한 제재와 과징금 규모 또한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개인정보위의 행정처분에 불복해 소송전을 이어가는 사례도 늘고 있다. 개인정보위는 현재 12건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최 부위원장은 “소송전담팀을 만들기 위해 최근 4급 상당의 변호사 채용을 결정했다. 소송전담팀이 꾸려지면 소송에 좀 더 잘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기업에 대한 당부도 나왔다. 최 부위원장은 “기업들도 좀 더 과감한 투자로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달라진 환경에 대해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며 “개인정보 유출이 줄어들면 소송 또한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글로벌 기업 및 국내 기업에 대한 경종을 울릴 것이라고 봤다. 염흥열 순천향대학교 정보보호학과 명예교수는 “다크패턴을 통해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해 온 글로벌 기업의 관행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본다”며 “이번 사안과는 내용이 다르지만 개인정보위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국내 기업에게도 일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최경진 가천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이용자 동의를 얻어야 하는 정보통신제공자의 합법적 근거와 책임성을 인정하고, 해외 사업자에 대한 국내 법 집행력을 확인한 것에 의의가 있다”면서 “다만 변화하는 개인정보처리 환경 속에서 한 사업자만 책임을 질 수 있는지는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