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로, 등급 전망은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탄핵정국 속에서도 국가신용등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한 것을 두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신평사 등에 한국의 정치·경제 시스템이 분리돼 있음을 알리는데 집중한 성과라는 평가다.
9일 재정당국에 따르면 피치는 최근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종전과 같이 유지한다고 밝혔다.
이번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 발표는 12·3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이어진 정치 불안으로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거나 경고 메시지가 나올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가 이어지는 가운데 나왔다. 피치는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향후 수개월 간 지속될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도, 한국 경제와 국가 시스템에 실질적인 영향은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재정당국이 신평사 책임자들을 직접 만나 한국 경제시스템에 대해 설명한 것이 주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2·3 비상 계엄 당시 피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국가신용등급 책임자들이 서울에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피치의 레네미 추크 아시아태평양 국가신용등급 담당자 이사는 전날부터 사흘간 예정된 연례협의를 위해 방한 중이었다. S&P 킴엥 탄 국가신용등급 아태총괄(전무)도 이튿날 여의도에서 개최되는 컨퍼런스 참석차 방한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킴엥 탄 총괄은 기획재정부 담당자와 즉석 면담을, 피치 측은 국회 비상계엄 해제 의결로 점차 안정을 되찾는 서울 분위기를 확인했다.
탄 총괄은 지난해 12월4일 여의도에서 개최된 열린 ‘지정학적 상황 변호로 인한 신용 불확실성 증가’ 간담회에서 “예상치 못한 계엄령 선포가 있었지만 단기간 내 문제가 해결됐다”며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AA인데, 이는 기대하는 바를 제대로 반영한 등급이라고 생각한다. 실질적으로 당장 등급을 하향 조정할 정도로 큰 영향은 없다”고 말했다.
경제당국은 신평사와의 스킨십을 늘리고 있다.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는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틀 전인 12월12일 신평사의 국가신용등급 글로벌 총괄과 화상 면담을 하고,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지난달 9일에도 추가 면담을 했다. 기재부, 외교부, 산업부, 금융위, 한국은행 등 17개가 넘는 부처·기관이 참여하는 ‘범정부 국가신용등급 공동대응 협의회’도 지난달 23일 출범했다. 최중구 국제금융협력 대사는 오는 11일부터 홍콩·싱가포르에서 3대 신평사 인사들과 잇따라 만난다.
3대 국제 신용평가사 가운데 비상 계엄 이후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발표한 건 피치가 처음이다. S&P는 통상 3~4월에 연례 협의를 하고 신용등급 보고서는 5~8월 쯤 낸다. 무디스는 올해 하반기 이후 신용등급평가에 나설 전망이다.
다만 피치는 비상 계엄과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으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진 점을 고려해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은 당초 2.0%보다 0.3%포인트(p) 낮은 1.7%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