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이하 ‘캡틴 아메리카4’)의 힘은 3대 캡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윙슈트가 아닌, 인간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
‘캡틴 아메리카4’(감독 줄리어스 오나)는 대통령이 된 새디우스 로스(해리슨 포드)와 재회한 후 국제적인 사건의 중심에 선 샘 윌슨(안소니 마키)이 전 세계를 붉게 장악하려는 사악한 음모 뒤에 숨겨진 존재와 이유를 파헤쳐 나가는 액션 블록버스터다.
캡틴 아메리카가 된 샘은 대통령 로스를 돕는다. 사이드와인더가 훔친 아다만티움을 회수하고, 덕분에 로스는 조약 체결이 결렬될 위기를 넘긴다. 이를 안 아이제아 브래들리는 못마땅해하지만, 샘은 희망을 주기 위함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백악관에 함께 갈 것을 권한다.
평화는 오래 가지 못한다. 백악관에서 아이제아 브래들리(칼 럼블리)는 로스에게 총격을 가한 혐의로 다시 감옥에 갇힌다. 가뜩이나 심약한 로스는 안위에 대한 걱정은 물론, 협상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사실 로스에게 조약 체결은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사안이다. 그는 아다만티움을 독점하지 않고 모든 나라가 공평하게 나눠 갖는다는 내용의 조약을 맺어, 딸 베키(리브 타일러)에게 자신의 변화를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베키가 함께 벚꽃을 구경했던 자신도 기억해 주길 바란다.
이야기는 그간 악인으로 분류됐던 로스의 변화를 쫓는다. 로스는 타고난 바탕에 새뮤얼 스턴스(팀 블레이크 넬슨)가 준 약의 영향이 더해져 전쟁을 일으킬 뻔하지만, 이내 캡틴 아메리카의 충고를 수용하고 사태를 수습한다. 그럼에도 이미 혈액에 흡수된 감마선으로 인해 레드 헐크가 되고 만다. 하지만 떨어지는 벚꽃잎을 매개로 폭주를 멈추고, 자신을 향한 샘의 믿음에 화답하듯 본디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후 과오를 반성하고 책임지며, 베키와의 관계도 회복한다.
이 과정에서 샘 역시 캡틴 아메리카로서 성장을 이룩한다. 그는 혈청을 맞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순간을 여러 차례 직면한다. 하지만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가 믿음을 줬다면 샘은 희망을 준다는 버키(세바스찬 스탠)의 말처럼, 끝내 그는 정의롭고 따뜻한 성정으로 스스로 방패의 주인임을 증명한다. 내면에 자리한 인류애는 혈청을 맞아도 결코 얻을 수 없는 힘이다.
‘캡틴 아메리카4’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과 희망을 말한다. 새뮤얼 스턴스가 “놈(로스)은 절대 안 변해”라며 불신을 야기해도, 샘은 로스를 믿는다. 호아킨 토레스(대니 라미레즈)는 스스로 의심하는 샘에게 “당신처럼 되고 싶었다”며 믿음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이 믿음들이 모여 인간은 타락한 내면, 더 나아가 타락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의 불씨를 지핀다. 이미 알지만 때때로 잊게 되는 교훈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묵직한 메시지만큼이나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의 역할도 막중하다. 새 캡틴 아메리카의 첫 활약상을 담은 작품이자 어벤져스의 재결합을 강하게 예고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고전을 면치 못했던 MCU의 구원투수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MCU에 꼭 있어야 하는 이야기임에는 동감하지만, 마니아가 아닌 이상 꼭 봐야 하는 이야기인지는 의문이다. 인간은 선(善)을 실현할 수 있는 존재라는 깨달음은 언제 어디서나 유효하지만, 풀어내는 방식이 진부하다. 특히 순식간에 백악관을 박살 내고 캡틴 아메리카를 땅속에 박아 넣은 레드 헐크가 불현듯 벚꽃에 동한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뻔하다. 아무리 벚꽃이 로스와 베티의 추억이 깃든 소재라고 해도, 관객에게 놀랍지도 흥미롭지도 않은 포인트임은 분명하다.
새 캡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액션은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샘은 초인간적 신체 능력 대신 뛰어난 두뇌와 강력한 윙슈트로 대적한다. 윙슈트의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맹렬히 하늘을 가르는 미사일과 비행기 날개, 화염에 휩싸인 채 날아오는 자동차도 한쪽 날개로 두 동강 낼 정도다. 다만 이처럼 슈트가 강력하다는 것은 전투에서 캡틴 아메리카가 슈트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다는 뜻이다. 신체적인 한계로 주먹이 아닌, 동선에 놓인 벽돌, 공구 등을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라는 마음으로 모든 수비가 공격화된 것을 볼 수 있다”는 안소니 마키의 설명 그대로다.
1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18분. 쿠키영상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