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가 부릅니다, '미키 17' 아닌 미키 반스 [쿡리뷰]

봉준호가 부릅니다, '미키 17' 아닌 미키 반스 [쿡리뷰]

기사승인 2025-02-17 20:23:46 업데이트 2025-02-17 21:12:03
영화 ‘미키 17’ 포스터.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키 17도, 미키 18도 아닌 미키 반스다. 비록 어떻게 죽어도 놀랍지 않은 소모품이 직업이지만, 분명 ‘무엇이 되고 싶다.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집요하게 던지는, 그래서 김춘수의 시 ‘꽃’을 연상시키는, 영화 ‘미키 17’이다.

‘미키 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로버트 패틴슨)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 이야기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다. 

2054년 니플하임 행성, 얼음 구덩이에 추락한 미키 17은 ‘좋은 하루’ 대신 ‘좋은 죽음’이라는 티모(스티븐 연)의 인사대로 꼼짝없이 죽기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기대는 빗나간다. 그를 먹어 치워야만 하는 크리퍼는 대신 그를 구해준다. 그렇게 세상에 있어선 안 될 멀티플이 탄생한다.

미키 17과 달리 과격하고 과감한 미키 18은 바로 미키 17을 죽이려고 하지만, 미키 17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미 16번 죽었지만, 여전히 죽음은 무섭고 끔찍하다. 무엇보다 지금까지는 생이 이어지는 느낌이었지만, 이번은 진짜 끝인 것만 같다. 미키 18 역시 “난 네가 아냐”라고 선을 긋는다. 서로 인식한 탓이다.

결국 상대방을 별개의 존재로 인정하지만, 공존은 쉽지 않다. 당장 미키 17은 여자친구 나샤(나오미 애키)의 엉덩이를 주무르는 미키 18을 보고 불륜 현장을 목격한 듯 충격에 빠진다. 가뜩이나 머릿속이 복잡한데, 원정 사령관 마샬(마크 러팔로)과의 식사를 가장한 실험에 끌려가기까지 한다.

영화 ‘미키 17’ 미키 18, 미키 17(로버트 패틴슨) 캐릭터 스틸.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미키 17은 스테이크 흉내를 낸 미완의 배양육을 먹고 속을 연거푸 게워 낸다. 구토의 원인은 필시 배양육이겠지만, 마샬 부부의 역겨운 대화도 한몫한 모양새다. 마샬은 자리에 함께한 카이(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를 ‘개척자의 완벽한 표본’, ‘자연번식 후보자’로만 평가한다. 이를 듣다 못 한 카이는 자신이 자궁으로 보이냐고 따져 묻는다.

마샬은 자연의 섭리와 인간 윤리를 강조한다. ‘하나의 영혼, 하나의 육체’를 부르짖으며, 익스펜더블을 “사탄의 작품”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칼로리 문제로 성관계를 전면 금지하고, 고통받는 미키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며 “인도적”이라고 판단하며, 작전 중 사망한 제니퍼와 그의 절친 카이를 ‘가임기 여성’으로 취급한다. 아무래도 통상적인 윤리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두 명의 미키 그리고 인간마저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마샬. 이들은 진정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지, 그렇다면 ‘비인간적’인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나샤에게 있다. 미키 17, 미키 18을 나눠 갖자는 카이에게 “둘 다 나의 미키”라고 말하는가 하면, 크리퍼와 미키의 목숨을 경시하는 마샬에게 “네까짓 게 뭔데 생사를 결정해?”라고 분개하며, 미키는 늘 ‘미키 반스’였다고 외친다.

영화 ‘미키 17’ 나샤(나오미 애키), 미키(로버트 패틴슨) 스틸.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크리퍼의 등장으로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더욱 선명해진다. 마마 크리퍼는 미키 18이 왜 미키 17을 살려줬냐고 묻자, “그럼 죽여?”라고 반문한다.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데에는 이유가 없는 것이다. “육질이 최상급”이라며 스스로 대상화한 미키 17을 사람 미키로 본 것이다. 신경가스로 몰살해야 하는, ‘비인간적’ 주적으로 간주되는 크리퍼가 가장 ‘인간적’이라는 점이 통렬한 아이러니다.

그리고 ‘크리퍼’는 마샬 아내 일파(토니 콜렛)가 ‘소름 끼친다(Creep)’는 뜻으로 마구잡이로 만든 이름이다. 베이비 루코, 조코…. 싸잡아 ‘크리퍼’로 불리지만, 이들 모두 자신의 이름이 있다. 미키가 미키 17도, 미키 18도 아닌 미키 반스인 것과 같다. 이렇듯 인간다움, 다시 말해 존재의 의미는 이름을 지키는 것에서 나온다.

곱씹게 되는 메시지와 별개로, 보고 듣는 재미도 상당하다. 검은 다이아몬드에서 튀어나온 베이비 루코가 한바탕 벌이는 소란은 어쩐지 흥겨운 음악과 어우러져 기묘한 무도회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몰아치는 눈보라 속 마마 크리퍼를 지키기 위해 떼를 이루는 크리퍼들의 모습 역시 장관이다. 또 루저 로버트 패틴슨, 빌런 마크 러팔로는 흥미롭고, 정재일 음악감독의 사운드트랙 ‘주 안에서 기뻐하라(Rejoice in the Lord)’는 짙은 여운을 남긴다.

오는 28일 국내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37분. 쿠키영상 없음.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심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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