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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막대한 손실을 입은 영풍이 오는 26일 조업정지를 앞둬 향후 실적 및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측면에서의 비전을 주주들에게 제시해야 할 시점에 놓였다. 내달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이미 주주제안이 이어지고 있어 이러한 압박은 현재진행형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영풍은 지난 1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연결기준 지난해 매출액 2조7957억원, 영업손실 1622억원, 당기순손실 2633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대비 매출은 약 26% 감소했으며, 당기순손실 규모는 3배가량 증가(2023년 -834억원)했다.
중대재해와 환경오염 규제 등 여파로 주력 사업장인 석포제련소의 가동률이 지난해 3분기 말 누적 기준 53.5%를 기록하는 등 절반에 그친 영향이 컸다.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인쇄회로기판(PCB) 부문 자회사 코리아써키트가 당기순손실 1217억원을 기록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올해 더 큰 산을 넘어야 한다는 점이다. 석포제련소는 당장 오는 26일부터 4월5일까지 58일간 조업을 정지해야 한다. 지난 2019년 오염 방지시설에 유입된 폐수를 무단으로 배출하다가 적발돼 관련 처분을 받은 뒤 취소소송을 거쳐 지난해 10월 대법원서 조업정지가 최종 확정됐다.
석포제련소는 지난 2021년에도 물환경보전법 위반으로 10일간 조업을 중단한 바 있는데 당시 800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토대로 단순계산하면 2개월 조업정지 시 손해액은 4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11월4일 대구지방환경청 수시 점검에서 황산가스 감지기 7기를 끈 채 조업한 것이 적발되면서 추가 조업정지 10일 처분도 받은 상태다.
조업정지 처분이 풀리더라도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 ‘황산’ 처리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영풍은 그동안 고려아연을 통해 황산을 처리해 왔는데, 지난해 말 환경당국이 고려아연에 제3자로부터 황산을 반입하지 말라는 개선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에 고려아연은 지난달 영풍에 황산 반입 금지 공문을 전달했다.
이처럼 반복되는 환경오염 문제와 이에 따른 실적 감소 등 여파로 내달 정기주총을 앞두고 소액주주연대·행동주의펀드 등 주주 및 투자자들의 개선 요구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풍의 지분율 3.59%를 보유하고 있는 고려아연의 계열사 영풍정밀은 내달 정기주총에서 집중투표제와 현물배당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의 건,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 안건 등을 의안으로 상정해 줄 것을 영풍 측에 요구한 상태다.
영풍정밀은 “영풍 경영진이 그동안 설비 투자에 소극적 행태를 보여 본업인 제련사업에서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했고, 적자 누적으로 지난 2013년 주당 150만원을 상회하던 주가는 올해 1월31일 기준 주당 41만8000원까지 하락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주주제안 배경을 밝혔다.
나아가 영풍정밀은 해당 주주제안의 답변 시한인 지난 11일까지 영풍 측의 입장을 듣지 못했다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도 제기한 상태다. 이에 영풍은 법과 원칙에 따라 주주제안을 검토 중이며 적법한 안건은 이사회 결의를 거쳐 정기주총에서 다룰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영풍의 지분 3%가량을 보유한 머스트자산운용은 공개서한을 통해 영풍에 자사주 소각, 액면분할, 사외이사 후보 추천 등을 제안했다. 특히 고려아연의 지배구조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영풍이, 정작 자사의 주주친화정책에는 미흡했다는 점을 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간 영풍 측에 주주가치 제고를 요구하는 공개 주주 서한을 수차례 보냈던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 역시 영풍정밀과 머스트자산운용의 주주제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히며 정기주총서 해당 안건이 통과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영풍이 고려아연의 거버넌스를 지적하며 경영권 인수 시도를 지속하고 있고, 그 와중에 실적이 크게 감소했다는 점에서 올해 주주제안은 예년보다 무게감이 크다”면서 “영풍이 정기주총을 통해 현재의 위기 극복 방안 및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향후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에 대한 명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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