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키뉴스가 지난해 8월5일 단독 보도한 ‘[단독] 바둑협회-바둑회사 ‘나랏돈 페이백’ 적발’ 기사 이후 바둑계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면서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
당시 대한체육회 감사실은 “대한바둑협회는 부문별 독점 권리가 없는 후원사와 4년간(2019~2022년) 26회에 걸쳐 5억6088만원의 수의계약을 맺고, 같은 기간 동일한 후원사로부터 수의계약 금액의 35.4%에 달하는 1억9865만원의 기부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는 내용을 ‘감사결과처분요구서’에 적시한 바 있다. 쿠키뉴스가 감사 대상에서 벗어난 2023년 입찰 내역을 확인한 결과, 27일 동안 11개 사업, 6억5469만원을 특정 바둑 업체에 ‘몰아주기’ 했던 의혹이 발견됐다.
지난 2022년 바둑협회에 4000만원의 기부금을 냈던 한 바둑업체는 2023년 3개의 사업, 총 1억6600만원을 8일 만에 연속으로 수주한다. 해당 업체는 협회가 운영하는 블로그의 게시글을 대신 작성하거나 2022년 12월 이후 운영하지 않은 어플의 ‘유지 보수’ 명목으로 용역을 수행했다. 그리고 이 업체는 2023년에 다시 협회에 기부금 명목으로 2500만원을 건넸다.
25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대한바둑협회는 지난 2023년 10월27일부터 같은 해 11월 22일까지 7개 업체에 총 11개 사업을 발주하면서 6억5469만원을 사용했다. 이중 복수로 용역 계약을 따낸 회사는 A업체(3개), B업체(2개), C업체(2개) 등 세 곳이다. 이외에도 D업체는 단 건 계약으로는 최대 금액인 9920만원을, E업체는 9000만원을 수주했다.
용역을 2개 이상 따낸 업체들은 2022년 대한바둑협회에 기부금을 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A, B 업체는 각각 4000만원씩, C업체는 4200만원을 협회에 기부했다. A업체는 2023년 대한바둑협회로부터 1억6600만원, B업체는 9999만원, C업체는 1억400만원을 용역비로 받았다. 2023년에는 A업체만 2500만원을 협회에 기부했다.
차례대로 살펴보면, 가장 먼저 C업체가 2023년 10월27일 ‘KBF바둑리그 방송홍보 용역’을 명목으로 5400만원을 받았다. 해당 업체는 같은 해 11월15일 ‘희망드림바둑교실 방송 홍보 용역’을 명목으로 5000만원을 추가로 받았다.

A업체가 수행한 7000만원짜리 ‘바둑 홍보망 구축’ 용역 과업지시서에는 유튜브 구독자 ‘20만명 달성’이 목표로 잡혔다. 하지만 현재 대한바둑협회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786명이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은 각각 팔로워 ‘10만명 달성’을 목표로 했으나 인스타그램은 888명, 페이스북은 1000명에 그쳤다.
바둑 홍보망 구축 사업 ‘용역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A업체는 ‘대한바둑협회 관련 뉴스 DB 구축’이라는 타이틀로 ‘블로그 게재’ 목록을 가장 먼저 담았다. 용역보고서에 명시된 ‘게재 목록(32회)’에는 쿠키뉴스가 2023년 12월21일 단독 보도한 ‘[단독] 21억에서 0원으로…바둑 예산 전액 삭감’ 기사를 비롯해, 마찬가지로 쿠키뉴스에서 기획 취재한 ‘갓생 대신 낭만…슬로우 게임 바둑 찾는 MZ세대 [가봤더니]’ 등 언론사 뉴스를 인용한 내용이 대다수였다. 이 과정에서 용역을 수행한 컴투스 타이젬 측은 쿠키뉴스에 기사 사용과 관련된 어떠한 협의도 하지 않았다.
이어 A업체는 대한바둑협회로부터 ‘인공지능 바둑 형세분석의 기능 개선 및 유지 보수 용역’을 3000만원에 따냈다. 문제는, 해당 기능이 사용되는 유일한 곳이 바로 대한바둑협회 ‘기보 뷰어’ 어플인데 해당 앱은 2022년 이후로 기보 업데이트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1년 동안 기보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던 ‘기보 뷰어’ 어플에 ‘인공지능 바둑 형세분석의 기능 개선’과 유지 보수를 명목으로 사업을 제공할 필요가 있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대한바둑협회 측은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기보 뷰어 앱의 주요 기능은 ‘나의 기보 만들기’를 통한 기보 제작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보 검토 기능”이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대한바둑협회 관계자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해당 어플을 만들 때 관리자였던 직원이 퇴사하면서 로그인 정보를 인수인계 하지 않아 지난 2년 동안 새로운 기보를 업로드하지 못했다”고 해명하면서 “기보를 새로 업데이트 하지 못한 것은 협회 입장에서도 아쉽지만, 바둑 동호인들이 애초부터 ‘기보 뷰어’ 앱에서 기보 감상 기능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리자 변경 등 절차를 거부하고 있는 퇴사자에게 ‘내용증명’을 보냈고, 협회 차원에서 법적 대응을 할지 여부도 검토 중”이라고 부연했다.
B업체는 ‘성인 바둑 교재개발 용역’과 ‘바둑 대회별 경기기록 DB 구축 용역’을 수행했다. 먼저 5999만원을 받은 성인 바둑 교재개발 사업을 살펴보면, 해당 사업을 통해 B업체는 63쪽짜리 책 4권(속성 바둑입문 1~4권)을 펴냈다. 4권을 모두 합쳐도 252쪽에 불과한 해당 출판물에는 ‘13줄 바둑 관전기’ 등 실효성이 떨어지는 내용으로 분량이 채워졌다.

다음으로 B업체가 4000만원을 받고 수행한 ‘바둑 대회별 경기기록 DB 구축 용역’을 살펴보면, ‘용역결과 보고서’에 용역 기간이 2023년 9월29일부터 2023년 12월31일로 명시돼 있다. B 업체가 해당 사업 입찰에 성공한 날짜는 2023년 11월22일이다. 이에 대해 대한바둑협회 관계자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사업은 먼저 발주하고 입찰을 나중에 진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법조계에 확인한 결과, 전문가는 쿠키뉴스에 “입찰 방해 여지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해당 어플은 지난해 서비스가 종료됐다. “경기 기록 DB를 구축했으나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 이유다. 어플이 사라지면서 현재는 DB에 구축된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조차 할 수 없는 상태다. B업체가 제출한 4장짜리 용역결과 보고서에는 2023년 8월12일부터 13일까지 이틀 동안 진행된 제5회 대통령배 전국바둑대회 데이터(승자와 패자의 이름, 흑백과 결과는 모두 ‘흑’과 ‘불계승’으로 통일)가 예시로 나와 있는 페이지 1장, 대한바둑협회 홈페이지 링크로 연결되는 페이지 1장이 전부다.

D업체가 ‘수의 계약’을 통해 9920만원에 진행한 ‘전국 동호인 디비전바둑리그 운영 용역’ 또한 의구심을 자아낸다. ‘컴투스 타이젬배 전국 동호인 디비전바둑리그’로 명명된 해당 용역 결과물이 12월17일과 23~24일 등 특정 기간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용역을 맡고 있는 D업체의 본사에서 진행한 2023 컴투스 타이젬배 전국 동호인 디비전바둑리그(서울) 수도권 1차 대회를 살펴보면, 바둑 인구가 가장 많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서울에서 진행한 대회였음에도 7개 부문 통합 참가자가 50여 명에 불과했다. 같은 해 8월 경기도 화성에서 열린 대통령배 바둑대회 참가자가 약 1300명이었다는 점과 비교해 볼 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E업체는 ‘성인 바둑교육 콘텐츠 개발 용역’에 입찰해 9000만원을 따냈다. 최종 결과물로 해당 업체에서 만든 ‘13줄·9줄 바둑판(4부)’과 ‘바둑알’ 1500세트를 제출했다. 바둑교육 콘텐츠 개발 용역에 입찰해 바둑판과 바둑알을 납품한 것이다.
해당 업체 홈페이지에 ‘머리가 좋아지는 바둑알’로 게시돼 있는 ‘안전바둑알 21호’ 가격은 1세트에 2만2500원, 4부 13줄·9줄 바둑판은 1만2150원이다. 바둑판과 바둑알 합산 가격은 1세트 당 3만4650원으로, 1500세트를 E업체 홈페이지에서 구매할 경우 총 비용은 5197만5000원이다. 바둑계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해당 업체는 바둑 강사가 구매하면 용품을 30% 할인 판매한다”면서 “1500세트를 구매한다면 3638만2500원이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바둑협회 측은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각 바둑판에는 각인이 새겨져 단순한 물품 구매와는 차별화된 맞춤형 교육 도구로서 가치를 지닌다”면서 “에코백과 제품 전용 보관 케이스를 제작해 교육 콘텐츠의 활용성과 보관의 편의성을 높였다”고 반박했다.
한편 쿠키뉴스는 2025 대한바둑협회 제2차 이사회가 열린 지난 22일, 하근율 신임 회장을 만나 바둑업체와의 ‘일감 몰아주기’ 입찰, 대한체육회 감사실에서 지적한 ‘수의 계약’ 문제 등 당면 과제에 대한 계획을 물었다. 하 회장은 “지난 1월 회장 선거 당시 제가 1번 공약으로 내세웠던 내용이 바로 ‘투명한 책임경영으로 혁신하는 협회’였다”면서 “문제가 있는 부분을 잘 살펴 조치하고, 향후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안동시바둑협회장과 경북바둑협회장을 역임한 하 회장은 지난 1월11일 제10대 대한바둑협회 회장 선거에서 유표투표 129표 중 50표를 얻어 45표에 그친 정봉수 전 회장, 34표에 그친 이종구(전 국회의원)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