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사기 안 치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세상이라고 합니다”
대규모 전세사기 발생 2년이 지난 지금까지 피해자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서울 동작구 아트하우스 임차인들은 전세사기 피해를 호소하며 경찰의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동작구 아트하우스 보증금 피해 세입자들은 7일 오전 10시 동작경찰서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동작구아트하우스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를 출범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임대인 부부는 동작구에 각각 건물 2채씩, 총 4채를 소유하고 있다. 이곳에서 총 75명의 세입자가 66억원의 금전적 손해를 입은 상태다. 임대인은 파산 절차를 밟고 있다.
권지연씨는 아트하우스의 마지막 임차인이라고 말했다. 권씨는 “계속되는 전세사기 소식에 불안했지만 ‘임대인이 돈이 많고 보증금이 반환 안 된 적이 없다’는 공인중개사의 말만 믿고 계약을 진행했다”며 “하지만 임대인은 계약할 당시 보증금을 반환할 수 없는 재정적 상태였다. 이미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대출 이자를 대신 내주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사회초년생이 악착같이 모은 보증금 1억7000만원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어 권씨는 “이번 전세사기 사건은 공인중개사까지 가담한 조직적인 사기 행위”라고 강조했다. 그는 “임대인의 딸인 공인중개사 대표가 계약할 때 임대인의 재정 상태를 속였다”며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 없는 걸 알면서도 임차인을 받았고, 저의 보증금은 이미 다른 세입자의 반환금으로 사용된 상태였다”고 호소했다.
임차인들은 공통적으로 수사 당시 경찰이 보인 미온적 태도를 지적했다. 또 다른 세입자 김량화씨는 “경찰이 전세사기 고소장을 접수할 때까지만 해도 증거 서류를 나중에 제출해도 된다고 했다”면서 “정작 수사관이 배정된 후 공소장에 서류가 첨부 안 됐고, 왜 첨부 안 했냐고 물어보면 책임을 세입자들에게 떠넘겼다”고 전했다.
이어 “민사소송 진행 과정에서 얻는 자료를 확보한 상태에서 수사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증거가 없어 기망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며 “아직 피고소인 신문도 진행하지 않는 상황이라 실제 처벌이 될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임차인들은 전세금을 돌려받기 위해 경찰의 제대로 된 수사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임대인의 파산이 인정되면 후순위 채권자인 임차인들은 사실상 보증금 대부분을 돌려받을 수 없다. 임대인의 파산과 무관하게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전세사기가 고의에 의한 불법행위로 인정돼야 한다.
이혁 주택세입자법률지원센터 세입자114 변호사는 “형사 재판에서 경찰의 수사로 수집한 증거를 통해 임대인들의 불법행위를 인정받지 못하면 민사 소송을 통해 별도로 임대인들의 불법행위를 주장해야 한다”며 “그런데도 경찰은 소극적인 태도로 수사에 임하고 있어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잃을지 두려워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철빈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전세사기 특별법 기한을 연장하고 피해자 인정 요건을 완화하는 등의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전세사기 특별법은 2023년 6월 시행 이후, 지난해 11월 한 번의 개정을 거쳤다. 개정안에 따라 전세보증금 5억원, 피해자지원위원회의 추가 인정이 있으면 최대 7억원까지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 공동위원장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이 점점 엄격해지고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는 “전세사기 초기에는 경찰의 수사 개시가 피해자 인정 요건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점점 사기죄 혐의가 강하게 입증돼야만 피해자로 인정해 주는 경향으로 가고 있다”며 “피해자 인정 비율 추이를 보면 전세사기 발생 초반에는 70% 이상이었는데 지금은 30%~40%대로 내려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정당한 사유 없이 1개월 이상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등과 같이 피해자 인정 요건을 단순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며 “더불어 전세사기 특별법을 올해 5월 종료시키기는 너무 이르다. 논의해야 할 쟁점이 있다면 일정 기간 더 연장하고 피해자 지원 체계를 이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