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는 왜 피어오르지 않는가 [데스크 창]

연기는 왜 피어오르지 않는가 [데스크 창]

기사승인 2025-03-21 13:16:50
헌법재판소. 쿠키뉴스 자료사진

기다리던 영화가 개봉해서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 이름은 ‘콘클라베’. 뜻 그대로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이야기다. 갑작스러운 교황의 선종으로 콘클라베를 위해 전 세계 추기경이 바티칸에 모인다.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조용한 충돌이 시작된다. 영화에선 교황이 되려는 추기경들의 야심을 집중해서 비춘다. 표를 얻기 위해 상대를 포섭하고, 스캔들을 이용하고, 부정을 저지른다. 새 교황이 선출되면 흰 연기를 피우는데, 정치적 암투 등을 이유로 콘클라베는 사흘째 결론이 나지 않는다. 그때 누군가 얘기한다. 교황 선출이 늦어지면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게 될 것이라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지 96일째다. 오는 23일이면 100일이 된다.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선고는 탄핵소추 의결서 접수 후 각각 63일, 91일 만에 이뤄졌다. 현재까지 헌재는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일도 공지하지 못했다. 윤 대통령 탄핵 사건 변론은 지난달 25일 종결됐다. 숙의 기간만 한 달째, 혼란은 거세지고 있다.

여전히 사기 탄핵을 주장하는 여당은 기각이나 각하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이어가고 있다. 야당 역시 헌재 사무처장의 국회 출석 요구 등을 언급하며 헌재를 압박하고 있다.

국민은 불신으로 돌아서고 있다. 한쪽 진영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용을 바라는 쪽도, 기각을 외치는 쪽도 모두가 불안하다. 매주 주말, 서울 도심에서는 여전히 탄핵 찬반 집회가 열린다.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뒤섞여 서로 다른 확신을 외친다. 피켓시위를 하던 당원은 사망하고, 단식하던 지지자는 병원에 실려 간다. 기자회견 도중엔 달걀이 날아다니고, 대학생들은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경제는 무너지고, 외교는 길을 잃었다. 모든 것이 흔들리는 가운데, 결정만 멈춰 서 있다.

지금 헌재에 필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책임이다. 더 이상의 지연은 숙의가 아니다. 침묵으로 비칠 뿐이다. 헌재가 결정을 늦출수록, 정치적 고려가 판단을 앞서고 있다는 인상이 짙어진다. 

헌재의 본질마저 의심받는다면, 어떤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국민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것이다. 이미 분열된 여론 위에 내려진 신뢰 없는 판결은 또 다른 혼란을 불러온다. 그 순간 무너지는 것은 단지 법의 권위가 아니라, 이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합의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민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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