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집단 제적’ 상황에 의료계 ‘자중지란’…의협은 뒷짐

의대생 ‘집단 제적’ 상황에 의료계 ‘자중지란’…의협은 뒷짐

서울의대·연세의대, ‘등록 후 투쟁’ 방식 채택
고려의대생 대표 5인, 복귀 방해 행위에 자성 목소리
의료계, 의협 비판…“정부와 적극적으로 대화 나서야”
대다수 의대생 여전히 완강…38개 대학 미등록 유지

기사승인 2025-03-28 06:05:08
서울의 한 의과대학 강의실 불이 꺼져있다. 곽경근 대기자

의과대학생 복귀 시한이 임박한 가운데 대학들이 추가 교육과정 편성은 없을 것이라며 학생들의 등록을 촉구하고 있다. 의대생 집단 제적 위기가 현실화되자 의료계 내부에선 학생들의 자율적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대한의사협회가 실질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 상황에서 의료계의 혼란이 가중된다.

27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수업을 거부한 의대생들의 무더기 제적 사태가 당장 이번 주부터 현실화할 것으로 보이자 의료계는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정부와 척을 지고 대화 없이 단일대오를 강조하던 기존 모습과는 달리 의료계 안에서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은 이달 말 등록을 마감하고 복귀 의사를 밝히지 않은 의대생을 제적 처리할 방침이다. 서울의대는 교육의 질과 학사관리 원칙을 유지하면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27일로 설정하고 이후에는 추가적인 교육과정 편성이 없을 것이라고 못 박은 상태다. 학사 유연화 조치가 있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정부와 대학이 강경 방침을 세우면서 일부 대학에선 의대생들의 복학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의대 학생들은 일단 등록 후 투쟁하는 방식을 택했다. 서울의대 의정갈등 대응TF는 26일 오후 10시부터 27일 오전 8시까지 전체 학년 휴학계 제출자를 대상으로 투쟁 방식과 관련한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 결과, 응답자 607명 중 등록에 찬성하는 비율은 65.7%(399명)로 집계됐다. 휴학을 계속하겠다는 응답은 34.3%(208명)에 그쳤다. TF는 “다수의 서울의대 휴학생이 미등록 휴학의 방식으로 투쟁을 이어나가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복학원 제출과 수강 신청을 통해 등록 절차를 마무리하길 바란다”고 공지했다.

연세의대 학생들도 일단 등록한 후 휴학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연세의대는 지난 21일 등록을 마감했다. 28일엔 미등록생에 대한 제적 처리가 이뤄진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25일 기준 연세의대 재적생은 881명으로 이 중 미등록 학생은 398명(45.2%)이다. ‘선 등록, 후 휴학’ 방침으로 미등록 학생 규모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연세의대는 막판까지 학생들이 복귀할 수 있도록 활로를 열어뒀다. 최재영 연세의대 학장은 26일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의 소중한 목소리를 듣겠다”며 “27일까지 학장실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겠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발송했다.

서울의 한 의과대학 강의실이 텅 비어 있다. 곽경근 대기자

고려의대는 28일로 예정된 최종 제적 처분을 앞두고 지난 25일 오후부터 제적·복학 관련 면담 신청을 받기 시작했는데, 하루 만에 215명의 학생이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의대 전 학생 대표 5명이 동료들에게 보낸 공개서한도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실명 입장문을 내고 “각 학생이 복귀 여부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고려의대 일부 학생들이 온라인 단체 대화방에서 등록금 미납 인증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동료들의 복귀를 방해해 경찰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 데 대해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비난과 감시 등이 이어지는 동안 학우 여러분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더는 불필요한 시선 없이 자신의 거취를 결정할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이 속속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의료계 선배들이 지지하고 나섰다. 고려의대를 졸업한 최안나 의협 전 대변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당연한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을지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아프다”면서 “학생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적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도권 대학병원 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가장 어리고 약한 학생들의 투쟁을 보면서 의료계 어른들은 반성해야 한다”며 “최약체인 학생들이 전방에 서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래를 짊어지고 갈 학생들이 (제적이나 유급으로) 피해를 입게 되면 앞으로 의료계의 분열은 더 커지고 힘든 시기를 겪게 될 것”이라며 “의료계는 하나가 되어 머리를 맞대고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구상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의협을 향해선 “학생들이 피해를 볼 경우 어떻게 해야할지 실질적 대안을 세우고, 교수협의회와 상의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 전경. 박효상 기자

의협 내부에서도 의대생들이 집단 제적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집행부가 소극적 태도를 보이며 방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은 26일 자신의 SNS에 “제적 위기에 처한 의대생들에 대해 그들의 문제라며 선을 긋고 탕핑(드러눕기)하고 있는 의협 집행부에 각성을 촉구한다”고 짚었다. 지난 24일엔 “위기에 처한 의대생들을 도와줄 계획이 없다면 ‘그만하고 돌아가라’고 하는 게 어른의 도리다”라고 피력했다.

서울시의사회는 의협이 정부와 대화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의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의협은 의료계의 종주 단체로서 사상 초유의 의대생 제적 위기를 막기 위해 구체적 정책 대안을 마련하고 정부와 적극적으로 대화하라”고 요구했다.

의료계 대내외적으로 비판이 이어지지만 의협은 “의대생들은 성인이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인다”며 뒷짐을 지고 있다. 의협은 26일 상임이사회를 열고 제적 시한 연기 요청 등을 검토하긴 했지만, 마땅한 대응책을 도출하진 못했다.

서울의대·연세의대 학생들의 입장 선회에 따라 다른 의대생들의 고민은 깊어질 전망이다. 대다수의 의대생이 기존 미등록 휴학 투쟁을 지속하겠다며 버티고 있어 집단 제적 위기는 여전하다. 의대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는 서울대, 연세대를 제외한 38개 의대 대표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일부 동요가 있지만 나머지 38개 단위는 미등록을 유지하고 있다”며 투쟁이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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