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사청은 지금의 상황 악화를 자초한 ‘장본인’은 아닐지라도 ‘방관자’였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방사청은 2023년 12월 KDDX 기본설계 종료 이후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HD현대중공업 기밀 탈취 및 공유 등으로 추가 사업추진을 두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방사청은 기본설계를 수행한 HD현대중공업과 통상의 함정 사업 전례에 따라 수의계약을 체결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방사청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있어서 원칙을 적용하여 ‘경쟁계약’으로 선회하기 보다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상생 협력 등을 고려해 ’공동개발‘이라는 제3의 방식을 모색하게 된다.
방사청의 대안 모색 시도는 긍정적 평가를 받아 마땅하지만 이후 일관성이 결여된 입장은 오히려 업체간 경쟁을 악화시켰고 이젠 ‘루비콘 강’을 목전에 둔 상황까지 자초했다. 대표적으로, 방사청 사업팀이 지난 3월 17일 사분위에서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위한 수의계약’을 추진을 최적의 안으로 보고할때 ‘유죄로 확정된 HD현대중공업의 기밀 탈취 및 공유 행위’와 ‘방사청 의뢰로 방첩사령부(이하, 방첩사)가 조사 중인 한화오션의 개념설계 원본 보관 및 도용 의혹’을 사실상 동일하게 취급한 것은 이중잣대를 적용했다는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방첩사는 방사청이 제기한 한화오션에 대한 의혹에 대해 ‘불입건’ 결정을 내렸다.
통상 분과위에서 보류된 안건을 재상정한다는 것은 안건 수정을 전제로 한다. HD현대중공업은 수의계약, 한화오션은 경쟁계약이라는 명확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방사청이 안건 재상정 시점을 특정하지 않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업체들과 무엇을 추가적으로 소통하겠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방사청이 업체의 확고한 입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비밀 지렛대’가 과연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고육지책으로 비춰질 수 있는 방사청의 소통 노력은 자칫 업체에겐 ‘무언의 압박’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KDDX 사업 추진을 위한 방사청의 결정이 지연되는 동안 언론을 통한 업체간 비방이 도를 넘고 있으며 ‘K-함정’ 해외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내 업체간 전략적 협력체계 구축이 꽃은 고사하고 꽃망울도 맺지 못하는 상황까지 초래될 수도 있다.
방사청은 더 이상 좌고우면할 것이 아니라 법과 원칙에 따라 결단을 내려야 한다. 지난 분과위에서 수의계약 추진에 이견을 밝힌 위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둘 중 하나이다. 하나는 안건 수정을 통해 수의계약 추진을 포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쟁업체들의 동의를 얻었다는 새로운 명분으로 수의계약을 다시 설득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두가지 방법 모두 현재 상황에서는 쉽지않아 보인다. 결국, 방사청 스스로 KDDX 사업을 둘러싼 난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하루빨리 인정하고 국회 국방위원회에 구원의 손길을 내 밀어야 할 것이다. 국회 국방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초당적 권고안이 도출된다면 KDDX 사업 정상화를 위한 새로운 계기가 마련될 뿐만 아니라 방사청 독단적 결정으로 초래될 수 있는 향후 정책감사 등의 사업 위험성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게된다.
박진호 국방부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