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이 다음 주 시행하려 했던 미국 철강관세에 대한 보복 조치를 90일간 보류하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가별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한 직후 내린 조치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10일(현지시간) 오후 입장문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유예 결정을 언급하며 “협상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회원국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은 (미국 철강관세에 대한) 보복 조치 채택을 마무리하는 동안 우리는 이 조치를 90일간 보류하려 한다”면서 “EU는 미국과 건설적 협상에 계속 전념할 것이며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상호 이익이 되는 무역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전날 EU는 회원국 표결을 거쳐 미국 철강·알루미늄 관세에 대응하기 위해 오는 15일부터 미국산 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잇따른 관세 부과 결정에 대한 EU 차원의 첫 보복 조치였다.
그러나 이 발표가 나온 후 수 시간 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제외한 국가에 10% 기본관세만 부과하고 국가별 상호관세 부과는 90일간 유예하겠다고 하면서 상황이 급반전했다. 당초 상호관세율이 20%로 예고된 EU 상품도 90일간은 10%만 부과된다.
이에 EU도 이날 보복관세 시행 계획을 번복하며 협상에 주력하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당초 이번 보복관세 조치가 상호관세가 아닌 철강관세에 대응하는 목적이었지만 협상 과정에서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가별 상호관세가 유예됐더라도 미국의 10% 기본관세, 자동차 및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부문별 관세는 여전하다는 점에서 EU가 본격 협상이 시작하기도 전에 지나치게 ‘저자세’라는 지적도 나온다.
올로프 질 EU 무역담당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의에 “물론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와 자동차 관세는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발효 중인 게 맞지만,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고 싶기에 ‘일시중지’ 버튼을 누른 것”이라며 “미국 측과 대화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협상과 관련해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별도 입장문에서 자동차와 모든 공산품에 대한 ‘상호 무관세’ 합의를 거듭 촉구했다. 앞서 7일 트럼프 대통령은 EU의 상호 무관세 제안에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EU에 미국산 석유와 가스를 더 구입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EU는 협상 불발에도 계속 대비한다는 입장이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협상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철강관세) 보복조치는 발효될 것”이라며 “추가적인 보복 조치에 대한 준비 작업은 계속된다”고 말했다.
한편, EU는 미국 이외의 제3국과 교역 확대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오후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과 전화 통화 하고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개시하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상품, 서비스, 투자 부문 ‘무역 자유화’에 중점을 두면서 재생에너지, 녹색 수소, 핵심 원자재와 같은 전략적 부문 협력을 심화하기로 했다.
또,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뉴질랜드, 캐나다 정상과도 잇달아 통화를 하고 예측가능한 국제 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협력 강화 의지를 피력했다고 EU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