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대형 증권사들이 올해 1분기 시장 예상치에 부합한 실적을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예년처럼 업권 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심화할 전망이다. 리테일(소매금융)에 기반한 종합금융서비스 수요가 높아지면서 대형사 대비 기반이 빈약한 중소형사는 시장지위 하락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15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5대 대형 증권사(미래에셋증권·한국금융지주·삼성증권·NH투자증권·키움증권)의 올해 1분기 합산 당기순이익 추정치는 1조2158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1조2368억원 대비 소폭 감소했으나, 대체로 시장 예상치에 부합한 안정적인 실적이라는 게 투자업계 측 분석이다.
안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4분기에는 비경상적 비용 등이 반영되면서 부진했으나, 1분기 국내 증시 거래대금 증가와 낮아진 금리 수준 등 우호적인 환경에 힘입어 안정적인 실적을 기록할 전망”이라며 “우호적인 운용 환경에 더해 1분기는 계절적으로 충당금 등 비경상적 비용이 대체로 발생하지 않은 영향이다”라고 설명했다.
대형사 가운데 미래에셋증권이 가장 높은 실적 성장세를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셋증권은 1분기 233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할 전망이다. 전년 동기(1705억원) 대비 36.65% 급증한 수준이다. 주요 사업부문인 해외주식·퇴직연금에서 경쟁력이 강화된 영향으로 해석된다. 특히 퇴직연금 부문은 지난해 4분기 기준 증권업종 점유율 28%(DB·DV·IRP 합산)로 가장 높다.
여기에 더해 해외 부동산 관련 불확실성도 점차 개선되는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셋증권의 지난해말 해외 부동산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1조4000억원이다. 설용진 SK증권 연구원은 “불확실성에 대한 고려는 필요하나, 지난해까지 보수적으로 손상차손을 인식하는 등 비용처리를 해왔던 점에서 전반적인 부담 수준은 이전보다 낮아질 것”이라며 “인도 쉐어칸 인수 등 경상적인 이익체력 개선 여지를 감안할 때 불확실성은 점차 완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NH투자증권은 타 대형사 대비 실적 감소폭이 높게 나타났다. NH투자증권의 1분기 순이익 전망치는 1926억원으로 전년 동기(2255억원) 대비 14.58% 감소했다. 이에 대해 안 연구원은 “상대적으로 실적 감소폭이 큰 이유는 지난해 다수의 IB딜을 수행하면서 실적 기저가 높았던 영향"이라며 "올 1분기 컨센서스에는 부합한 수치”라고 말했다.
올해도 중요한 ‘거래대금’ 수익, 대형사 쏠림에 중소형사 ‘위태’
업계에서는 올해 증권사 실적을 좌우할 핵심은 여전히 거래대금에 기반한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수수료에 있다고 분석한다. 거래대금이 단순 위탁매매 수수료 외에도 주식자본시장(ECM)과 신용융자 등 다양한 수익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설 연구원은 “유동성과 거래대금, 부동산 경기, 금리 등 그동안 증권업종 실적을 견인해 왔던 주요 지표가 연관성을 보유한 만큼 여전히 거래대금은 핵심 지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했다.
대체거래소(ATS) 넥스트레이드 출범에 따른 하루 12시간 국내 주식 거래도 위탁매매 수익성을 강화하는 요인이다. 지난달말부터 넥스트레이드에서 거래되는 국내 증시 상장 종목은 796개에 달한다. 지난 11일 기준 넥스트레이드 거래대금은 3조7130억원으로 같은날 한국거래소(코스피·코스닥·코넥스 합산) 거래대금 14조3136억원의 25%에 달한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국거래소 거래량의 15%로 가정 시 대체거래소 설립으로 증권사가 연간 수취하는 브로커리지 수수료수익은 최대 1조7000억원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중소형사는 이같은 수혜에서 배제된 모양새다. 대형사 대비 상대적으로 위탁매매 부문에서 규모의 경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탓이다. 더불어 넥스트레이드 거래에 따른 수익 개선세보다 원활한 복수 거래 체제를 위한 자동주문전송시스템(SOR) 솔루션 도입 및 운영 비용에 따른 지출 부담도 높다. 특히 미래에셋·삼성·신한투자·키움·한국투자증권 등 대형사가 넥스트레이드의 모든 시장에 참여하는 반면, 중소형사인 다올·부국·신영·유진·한양·SK·iM증권은 일부 시장에만 발을 들인 상황이다.
설 연구원은 “넥스트레이드로 전체적인 국내 주식시장 거래대금이 증가하더라도, 실적 측면의 긍정적 영향은 대형사에 국한될 것”이라며 “이미 해외주식·퇴직연금 사업에서도 유사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대형사 중심의 시장 형성이 이뤄지는 만큼, 종합금융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높은 리테일(소매금융) 고객 중심으로 대형사 위주 수요가 높아질 것”이라고 봤다. 이어 “향후 적극적인 틈새시장 공략이나 선택과 집중을 통한 경쟁력 제고를 이루지 못한 중소형사 중심으로 시장지위 하락 추세가 이어질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중소형사들의 실적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유진투자증권, SK증권, iM증권, 현대차증권 다올투자증권 등 5개 중소형 증권사의 지난해 연결 기준 합산 당기순손실은 1981억원으로 전년 동기 729억원의 순이익에서 크게 뒷걸음질 쳤다. 부동산PF 관련 대손충당금 설정과 해당 시장 침체가 손익구조 악화의 주된 이유다.
증권사 관계자는 “그동안 중소형 증권사를 흔들던 부동산PF 충당금 문제는 올해 대부분 완화되는 상황이지만, 대형사를 바라볼 수 있는 수익성을 확보하기에는 미흡한 경우가 많다”면서 “사별로 유의미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재성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도 “(소형 증권사들은) 수익성 저하와 자본확충 부족, 시장지위 하락 등 부정적인 환경을 맞이한 가운데 영업환경 변화까지 고려하면 주어진 조건 속에서 업무특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나신평은 토스증권을 대표적인 업무특화 사례로 꼽았다. 토스증권은 해외주식 위탁매매업무를 특화 사업으로 강화하고 있다. 토스증권의 지난해 해당부문 점유율은 14.1%로 업계 4위에 달한다. 자기자본규모도 지난 2020년 290억원에서 지난해 2993억원으로 크게 뛰었다. 윤 연구원은 “토스증권은 후발주자로서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대형사와의 경쟁에서 특화된 강점을 살린 결과 지난 2022년까지 적자에 머무르던 순이익이 지난해 1315억 원으로 늘었다"고 짚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