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11일 경기 광명 신안산선 터널이 무너지면서, 작업자 2명이 매몰됐다. 이 중 한 명은 사고 하루 만에 구조됐으나 다른 한 명은 숨졌다. 지난해 서울 마포구 오피스텔 현장에서는 세 차례 붕괴 사고로 노동자 7명이 다치기도 했다.
부실공사 사고가 반복되면서 사회적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잇따른 사고는 시공뿐 아니라 감리 등 전 과정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서울은 복잡한 교통, 지하시설물, 민원 등으로 감리 난도가 특히 높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감리 제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서울연구원의 ‘서울의 공사여건 감안한 서울시 건설공사 감리 기능 강화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은 잦은 주말·야간 공사 진행 등 갑리업무 수행 여건이 타 시도에 비해 매우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지자체와 서울시 건설공사 감리업무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감리자, 시공자,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타 지자체 대비 서울시 건설공사 감리업무의 어려운 점’으로 ‘과도한 민원’(64.3%)이 꼽혔다. 이어 ‘많은 지하시설물’(34.3%), ‘복잡한 교통처리’(32.9%), ‘발주처의 과도한 업무 지시’(30.7%)가 뒤를 이었다.
서울시 감리업무 중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힌 ‘민원’은 본래 감리 업무가 아님에도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감리원이 직접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공정관리·품질관리·안전관리 등 핵심 업무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감리 제도를 강화하려면 현장에 맞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감리 비용을 현실에 맞게 조정하고, 감리 인력이 현장에 제대로 배치되도록 기준을 손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설계도서 및 시공성 검토 시간을 확보하게 하고, 감리자들이 불필요한 서류 작업에 시달리지 않도록 행정 절차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외에도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고, 젊은 기술 인력의 참여를 늘리는 방식으로 감리 시스템을 현대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다. 특히 공사 규모나 복잡도에 따라 감리자가 현장에 상주할지 여부를 유연하게 정하고, 입찰 과정에서 기술료 책정 기준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민간 건설 현장에 대해서도 개선이 요구됐다. 30세대 이상 아파트처럼 규모가 있는 민간 공사는 착공 전에 감리계획이 제대로 짜였는지 미리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아울러 현재는 감리자가 문제가 생기면 ‘공사 중지를 요청’만 할 수 있는데, ‘공사 중지 명령’ 권한을 부여하는 법 개정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보고서는 “서울시 공사여건은 전국에서 가장 어려운 수준이지만 이를 고려한 감리 기준이나 제도는 부족하다”며 “감리제도 전반을 공공과 민간 부문으로 구분해 제도적·행정적·기술적 기능을 함께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홍섭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쿠키뉴스에 “서울연구원 보고서에서 제시한 제도적·기술적 기능 강화 방안에 공감한다”면서도 “제도 개선만으로는 부족하고, 감리자가 책임만 떠안지 않고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감리제도의 근본적인 운영 방식과 현장 여건 자체를 바꾸는 환경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 감리제도는 도입 초기부터 발주자 책임은 비껴가고 감리자에게 과도한 책임이 쏠리는 구조로 운영돼 왔다”며 “자문 역할에 가까운 감리자가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현실부터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감리업계는 컨소시엄 중심 구조에다 인력 기준도 불명확해, 감리 대가가 인력 확보나 역량 유지에 턱없이 부족하다”며 “특히 안전 관련 역량이 부족한데도 책임은 감리자에게 돌아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