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LG배 파행 사태’ 이후 불참을 확정하면서 한국기원은 대응 방안을 찾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삼성화재배와 함께 한국 주최 ‘메이저’ 세계 기전이었던 LG배가 30주년을 맞는 제30회 대회에서 ‘마이너’ 전락 위기에 놓였다.
28일 쿠키뉴스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한국기원은 LG배 불참을 통보한 중국 선수 대신 역대 우승자를 초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역대 LG배 우승자는 한국 기준 이창호 9단, 유창혁 9단을 비롯해 은퇴한 이세돌 9단, 이번 대회 예선에서 탈락한 강동윤 9단 등이 있다. 일본기원 소속으로는 왕리청 9단, 장쉬 9단, 대만 국적으로 저우쥔쉰 9단 등도 우승 경력이 있다.
세계바둑대회에서 ‘메이저’ 기전으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승 상금, 출전 인원 등 여러 가지 기준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양 삼국’ 모두의 출전이 필수다. 대표적으로 대만이 주최한 ‘중환배’ 세계대회에서 중국이 불참하면서 해당 기전은 ‘마이너’로 분류된 사례가 있다. 이번 제30회 LG배 또한 중국 선수단이 전원 불참한다면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마이너 기전으로 강등이 불가피하다.
이와 관련해 한국기원 관계자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메이저 분류에 관한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통상 출전 선수 16명 이상, 우승 상금 1억5000만원 이상인 경우에는 메이저 기전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이 주최하는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에 해당하는 기준이다.
중국바둑협회 관계자가 밝힌 불참 사유는 “지난 제29회 LG배 결승 3국이 끝난 이후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성명을 냈고, 한국기원에 재대국과 심판 징계 등을 요구했으나 한국기원에서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기원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중국 선수 대신 역대 우승자를 초청하는 방안 등에 대해) 공식 보도자료가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다만 중국은 이번 LG배 불참 조치가 한국과 바둑 교류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중국바둑협회 관계자는 “이번 LG배 불참 결정이 향후 한국에서 열리는 다른 세계바둑대회에도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등 국가 대항전에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양 삼국’만 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의 교류가 단절된다면 양국 바둑계 모두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편 이번 사태는 지난 1월22일 열린 제29회 LG배 결승 2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결승 1국에서 기선을 제압하면서 우승까지 단 1승을 남긴 중국 커제 9단은 2국에서도 초반부터 큰 우세를 잡았다. 하지만 한국에만 존재하는 ‘사석(死石·따낸 돌)’ 관리 규정에 의해 경고 1회와 벌점 2집을 받은 데 이어, 잠시 후 다시 같은 규정 위반으로 ‘반칙패’를 당했다.

1-1 상황에서 펼친 결승 3국은 반대로 변상일 9단이 유리한 흐름이었다. 커제 9단의 패배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초·중반 사석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던 커제 9단이 연속해서 따낸 돌을 아무렇게나 던지는 행위를 반복했고, 심판이 개입해 경고 1회와 벌점 2집을 부여했다.
커제 9단은 심판 판정에 불복해 크게 항의했다. 한국 손근기 심판에게 삿대질을 하며 언성을 높인 커제 9단은 결국 경기장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고, 한국기원은 ‘기권패’를 선언했다. 변상일 9단 입장에선 불리한 국면에서 2국 ‘반칙승’, 반대로 3국은 필승지세 국면에서 ‘기권승’을 거두면서 우승을 한 셈이 됐고, 중국 바둑 팬들은 변 9단의 우승을 조롱하는 ‘밈’을 만드는 등 감정 싸움으로 번졌다.
쿠키뉴스가 지난 2월5일 단독 보도한 ‘[단독] ‘LG배 사태’ 의견 낸 신진서 “3국은 커제 잘못도 크다” [쿠키인터뷰]’ 기사가 중국 주요 언론에 번역돼 실렸고, 이후 중국 바둑 팬들의 의견은 둘로 갈렸다. 여전히 커제 9단을 옹호하는 의견도 적지 않지만, ‘세계 일인자’ 신진서 9단의 의견대로 3국을 두다 말고 항의를 하다 대국장을 이탈한 커제 9단의 행동 역시 잘못이라는 견해도 힘을 받았다.
한국 주최 ‘풀리그 대회’인 쏘팔코사놀배에 커제 9단을 비롯한 중국 선수단이 불참하는 등 경색 국면을 보였던 양국 관계는 최근 다시 교류를 이어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LG배 사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한국기원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당장 중국 바둑리그 출전 불가 조치 또한 풀어야 할 난제다. 바둑계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한국 프로기사들이 중국 바둑리그(갑조리그, 을조리그, 여자리그 등)에 용병으로 출전하면서 매년 약 15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면서 “LG배 사태 이후 올해 한국 선수들의 중국리그 진출이 좌절됐는데, 이로 인한 손실이 막대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