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기라는 것이 얼굴도 중요하고 목소리도 중요하지만요. 배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대체 불가이길 원할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이혜영) 선생님 에너지는 고유하잖아요. 대체 불가죠.”
무대부터 매체까지 영역을 가리지 않고 활약해 온 배우 김성철이 또 다른 목표를 세웠다. 지난달 28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롤모델로 영화 ‘파과’를 함께한 이혜영을 꼽으며, 이같이 밝혔다.
‘파과’(감독 민규동)는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조직에서 40여 년 활동한 레전드 킬러 조각(이혜영)과 평생 그를 쫓은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김성철)의 강렬한 대결을 그린 액션 드라마다.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다.
투우는 조각과 대등하게 작용하며, 극에 끊임없이 긴장감을 불어넣는 인물이다. 동시에 진실이 밝혀지는 후반부까지, 관객이 머리로 받아들이기 힘들어도 흐름상 납득돼야만 하는 인물이다. 연기하기가 녹록지 않다는 뜻이다.
김성철은 이러한 캐릭터를 세밀한 감정 표현으로 구현해냈다는 평을 받는다. “시나리오에서도 원작에서도 투우의 감정은 알 수 없는 느낌이잖아요. 저는 ‘알 수 없음’을 캐내겠다는 목표 의식이 있어요. 투우의 마음들이 (관객에게) 일차원적 감정이 아닌 다채로운 감정으로 다가가길 바랐어요. ‘파과’는 조각을 대변하는 이야기고, 투우라는 인물은 조각을 완성할 수 있는 마지막 퍼즐이지 않을까 했어요. 마지막 퍼즐을 좋은 곳에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특히 조각에 대한 투우의 미묘한 감정선을 탁월하게 그렸다. 각색을 거치면서 원작과 달리 애정은 옅어졌지만, 김성철은 “그런 힌트를 줬으면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그 감정이 증폭되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식으로 빌드업할지 얘기를 많이 나눴었어요. 사실 원작 투우보다 영화 투우가 더 확장됐다고 생각해요. 원작 텍스처를 살리면서도 증폭되길 바랐어요.”

‘파과’의 볼거리는 여럿이지만, 무엇보다 수수께끼처럼 풀리는 조각과 투우의 질긴 관계가 핵심이다. 이에 이들로 분한 이혜영과 김성철의 호흡이 가장 중요했다. 김성철은 “선배들 연기를 모니터하면서 미쳤다고 한 경험은 많은데 경이롭다고 한 적은 처음”이라며 이혜영을 치켜세웠다.
“처음 선배님과 촬영하는 날 저 멀리서 보고 있었는데, 뭘 안 하셨는데도 품격이 느껴졌어요. 이미 얼굴이 조각이 되셨더라고요. 60년 동안 쌓인 연륜과 경험에는 경이롭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굳이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아도 저는 투우로서 까불었고, 선생님은 조각으로서 저를 대해주셔서, 촬영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그러면서 이혜영에 대해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거듭 말했다. 그렇기에 조각이 실사화될 수 있었다고도 했다. “선생님의 유니크한 이미지는 어디서도 못 봤어요. ‘조각을 할 수 있는 배우’ 생각하면 바로 이혜영 나오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 작품의 일원이 된 게 감격스러웠어요. 원작이 있으면 대중분이 가상캐스팅도 하시는데, 상상과 다르면 지탄을 받잖아요. 저는 몰라도, 선생님이 안 어울린다고 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마지막 촬영을 마친 뒤 이혜영과 민규동 감독이 부둥켜안고 울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현장에 함께 있었던 김성철은 “‘안되는 걸 끝냈다’, 이 감정이 정확할 것”이라고 돌아봤다. “선생님은 촬영 길게 하시는 것도 힘들어하셨어요. 저랑 체력이 같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거기에다 액션까지 2주 내리 하셨으니 지칠 대로 지치셨을 거예요. 감독님도 (그 고생에) 공감하셨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피칠갑이 돼서 끝났다는 느낌으로 호흡을 내뱉으시는데, 감독님이 선생님을 안고 오열하시더라고요.”
‘파과’는 배우들의 열연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극중 인물도 출연진도 스스로 쓸모를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호평이 많다. 김성철 역시 ‘파과’를 통해서 자신의 쓸모, 더 나아가 목적 있는 삶에 대해 성찰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제가 배우로서 한 해 연극, 뮤지컬, 영화, 드라마 다 하고 싶다는 목표를 이뤘었어요. 그런데 뭔가 공허해지더라고요. 목표 있는 삶보다 목적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던데, 투우에게도 적용되더라고요. (조각이) 투우한테 목적을 묻는데 투우가 자기가 어디 가는지도 모르는데 물어본다고 하잖아요. 투우도 그 답을 찾고 있던 애인 것 같기도 하고요. 대본 안에서 답을 많이 찾을 수 있어서 재밌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