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 모를 부진을 겪고 있는 석유화학업계가 올 2분기에도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들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절반이 지났음에도 좀처럼 업황 개선이 쉽지 않은 가운데, 이대로 가다간 3년 뒤 업계 절반이 증발할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까지 나오고 있어 정부 주도 구조조정의 실행이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 석화업계에 따르면, LG화학, 롯데케미칼, 금호석유화학 등 주요 기업들의 2분기 실적이 이달 말을 시작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증권가에선 이란-이스라엘 전쟁 이전 저유가 기조에 따라 전년 동기 대비로는 일시적 반등이 있을 수 있겠으나, 적자 흐름이 여전히 지속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유안타증권은 유가 하락 전 구매한 높은 원료가, 재고 평가 손실 등 여파로 4사 기업의 합산 영업이익이 1분기 4713억원에서 2분기 3552억원으로 2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별로 살펴보면, NH투자증권은 LG화학의 2분기 영업이익이 전 분기 대비 34% 감소한 2950억원을 기록하며 시장 컨센서스인 3599억원을 하회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석유화학 부문은 95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됐다.
롯데케미칼은 2분기 1700억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2023년 4분기 이후 7개 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됐다. KB증권 역시 롯데케미칼의 2분기 영업손실이 1900억원대를 기록하고, 3분기에도 1000억원 수준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금호석유화학은 합성고무와 합성수지 부문에서 실적 반등을 기록하고 있어 2분기 77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겠지만, 1분기(1206억원) 대비로는 36%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에틸렌 등 범용 석화제품의 중국발 저가 공세가 이어지면서 국내 석화업계는 몇 해째 부진을 지속하고 있다. 여기에 올해 초부터 이어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 정책에 따라 통상환경도 악화되고 있다.
주요 기업들은 지난해부터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을 위한 시설 정비 등 속도감 있게 사업재편을 추진하고 있으나, 가동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인 범용 석화제품 생산설비에 따라 적자폭이 점차 커지는 추세다. 특히 국가기간산업 및 중후장대산업 특성상 공장 규모가 크고 설비 단가가 천문학적으로 높아 정부 주도의 재편이 필요하나, 탄핵 정국 및 조기 대선 체제에 따라 그간 이러한 절차들이 미뤄져 왔다.

업계는 지금 시작해도 이미 늦었다며 빠른 조처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김지훈 대표파트너는 지난 2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제1회 국회미래산업포럼’에서 “현재 국내 석화기업들의 현금성 자산과 최근 영업손익을 기준으로 분석해보면, 다운턴(하강기)이 지속될 경우 3년 이상 생존 가능한 기업은 전체의 50% 수준에 불과하다”며 “특히 산단별 1~2개 기업이 법정관리에 돌입하면 미수채권 발생과 주요 거래처 상실로 중소기업을 비롯해 연쇄 파산이 발생할 수 있고, 이것이 실물경제 악화 및 금융시장 불안정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 대표파트너는 “여수·울산·대산으로 대표되는 국내 석화 산단이 각자 다른 구조와 리스크를 갖고 있어 맞춤형 규제 완화, 세제 인센티브, 정책 금융 등 구조조정 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더욱 적극적인 정부 주도 재편을 요구했다. 기업 간 결합 등 재편을 위해선 협업환경 조성이 필요하지만, 공정거래법 등 현행 법·제도상 동종업계 간 논의가 경쟁제한으로 해석되는 등 기업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방지턱’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김민우 롯데케미칼 전략기획본부장은 “개별 기업 단위를 넘어서는 구조 변화를 통해 경쟁력·효율성·유연성을 강화하면 현재의 어려움은 극복 가능하다”며 “설비부터 기술과 운영역량, 제품, 고객 등 현재의 자산 가치를 최대한 보존하며 현 업황을 타개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다각적인 지원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엄찬왕 한국화학산업협회 부회장은 “기업 자구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수준의 구조적 복합 위기”라며 “사업 재편에는 최소 2~3년이 걸려, 사업재편 조기 착수가 경쟁력 확보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속도감 있는 사업재편을 위해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의 사업재편 승인 기준 완화와 공동거래행위 특례 조항 신설 등이 필요하고, 사업재편 활성화를 위한 세제 지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