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창작 뮤지컬이 세계로 향한다. 그룹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로 대표되는 K팝, 전 세계에 ‘오징어 게임’ 열풍을 일으킨 K드라마, 콧대 높은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4관왕을 휩쓴 ‘기생충’(감독 봉준호) 등 K영화 다음은 K뮤지컬 차례다. 공연업계는 한류 영향력이 큰 일본과 중국은 물론, 뮤지컬 본토로 불리는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 진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태생부터 글로벌, 해외 시장 노리는 대형 뮤지컬
최근 태생부터 해외 시장을 노린 대형 뮤지컬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EMK뮤지컬컴퍼니가 2019년 처음 선보인 뮤지컬 ‘엑스칼리버’가 대표적이다. 앞서 일본에 수출한 창작 뮤지컬 ‘마타하리’와 ‘웃는 남자’와 달리, ‘엑스칼리버’는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 진출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작품이다. 제작사는 ‘엑스칼리버’ 실황 영상을 미국 공연 스트리밍 플랫폼에 선보이며 글로벌 관객과 접점을 만들었다. 한류를 등에 업은 작품도 있다. tvN 인기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무대로 옮긴 동명 뮤지컬은 지난 9월 일본 후지TV와 손잡고 레플리카 공연일 기획 중이다. 한국 배우들이 출연하는 오리지널 투어도 논의 중이다.
그간 한국 창작 뮤지컬의 해외 진출을 이끈 건 대부분 중·소형 작품이었다. 2007년 일본에서 막 올린 ‘사랑은 비를 타고’를 필두로 ‘빨래’, ‘마이 버킷 리스트’, ‘김종욱 찾기’ 등이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 수출됐다. 요즘도 비슷하다. 폴란드 과학자 마리 퀴리의 생애를 다룬 ‘마리 퀴리’는 내년 3월 일본에서 현지 관객을 만난다. 인공지능 로봇이 주인을 살해해 법정에 서는 내용의 뮤지컬 ‘인간의 법정’은 지난 9월 첫 공연에 앞서 중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스웨덴과 판권 계약을 맺었다.
아시아 넘어 뮤지컬 본고장으로
한국 창작 뮤지컬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시도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등을 한국에 소개한 공연제작사 오디컴퍼니는 미국 소설가 F.스콧 피츠제럴드의 명작 ‘위대한 개츠비’를 글로벌 창작 뮤지컬로 개발한다. 미국 뉴욕을 기점으로 현지 창작진 및 배우들과 손잡고 소설을 뮤지컬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리딩을 마쳤고, 이후 브로드웨이 극장주와 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발표회도 연다. 오디컴퍼니는 이밖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인생을 다룬 ‘피렌체의 빛’, 뷜 베른의 소설에서 영감 받은 ‘캡틴 니모’ 등도 선보일 계획이다.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뮤지컬 ‘광주’는 지난 10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현지 관객을 만났다. 정식 공연에 앞서 작품의 해외 진출 가능성을 확인하는 쇼케이스 공연을 통해서다. 현장에는 현지 공연계 관계자와 관객 500여명이 참석했다. 뮤지컬 ‘하데스타운’ 등을 제작한 토니상 수상 프로듀서 랍 리쿠이는 공연을 보고 “역사적 사실에 토대를 둔 공연이라 더욱 감동적”이라며 “브로드웨이에서 충분히 공연될 수 있는 묵직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한국 창작 뮤지컬을 해외에 소개하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K-뮤지컬로드쇼’도 최근 미국과 영국으로 발을 넓혔다. 2016년 중국 상하이에서 시작한 행사를 올해 영국 런던에서도 개최했다. 미국과 영국을 무대로 한국 창작 뮤지컬의 낭독공연과 시범공연도 지원한다. 익명을 요청한 공연계 관계자는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은 한류의 영향력이 세 한국 창작 뮤지컬 진출이 활발했다. 이제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큰 뮤지컬 시장인 영미권으로 나아가려는 제작사가 많아졌다”면서 “앞서 해외에서 쇼케이스를 연 작품도 현지 관계자들로부터 ‘당장 공연해도 되겠다’는 등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원종원 순천향대학교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한국 뮤지컬은 세계 시장에서 이미 충분한 경쟁력을 지녔다. 창작진 역량이 뛰어나고 신인 창작자들도 꾸준히 발굴되고 있다. 여기에 원소스 멀티유즈(하나의 원형 콘텐츠를 다른 장르로 변용하는 전략)를 활용하면 더욱 놀라운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며 “다만 원작 유명세에만 의존하지 않고, 공연 문법과 특성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얼마나 기발하게 원작을 변용하는지가 세계 시장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열쇠”라고 짚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