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트윗이 드라마에?…표절일까 아닐까

내가 쓴 트윗이 드라마에?…표절일까 아닐까

기사승인 2023-03-25 06:05:01
넷플릭스 ‘더 글로리’ 스틸컷.

학창 시절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문동은(송혜교)은 가해자 이사라(김히어라)를 찾아가 이렇게 묻는다. “넌 진짜 신이 있다고 생각해?” 유명 교회 목사의 딸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사라는 “신성모독”이라고 분개하며 “천벌 받기 싫으면 회개해”라고 말한다. 이때 문동은의 반격이 장관이다. “그래? …응. 방금 하느님이랑 기도로 합의 봤어. 괜찮으시대.”

온라인에서 ‘문동은의 신들린 말발’로 유명해진 이 장면을 보고 일부 시청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웹툰작가 이말년이 2011년 블로그에 쓴 글과 비슷한 대사라서다. 당시 이말년은 ‘만화에서 예수님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해 불쾌했다. 공개 사과하라’는 독자에게 “죄송하다. 따로 기도해서 당사자(예수)와 합의했다”고 응수했다. 혹시 이 대사 인용, 당사자와 합의한 걸까. 쿠키뉴스가 ‘더 글로리’ 관계자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했으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쓰던 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매스미디어가 온라인 밈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콘텐츠 제작자들의 저작권 의식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누리꾼 A씨는 얼마 전 쿠팡플레이 ‘안나’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똑똑하다는 말 듣고 자란 애들은 자기가 쓸모없어졌다는 생각에 몹시 취약해요”라는 대사 때문이다. 자신이 6년 전 트위터에 쓴 글과 판박이였다. A씨는 쿠키뉴스에 “(해당 트윗과 관련해) ‘안나’ 제작진으로부터 사전에 연락받은 일은 없었다”면서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예전에 쓴 트윗을 보고 대사를 쓰신 것 같아 신기했다”고 말했다.

SBS ‘미운우리새끼’는 웹툰작가 이말년의 유튜브 콘텐츠 내용을 무단으로 가져와 뭇매를 맞았다. 방송화면 및 유튜브 캡처

TV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2019년 방영한 tvN ‘로맨스는 별책부록’ 속 한 장면. 만취해 택시를 타고 귀가하던 차은호(이종석)는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받는다. “우리, 집에서 마셨잖아. 그런데 넌 누구 집에 간다는 거야.” 온라인에선 이 에피소드가 드라마 방영 1년여 전 SNS에서 퍼진 가상 이야기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SBS ‘미운우리새끼’ 제작진은 출연자끼리 막무가내 토론을 하는 에피소드에 이말년 작가가 유튜브 방송에서 먼저 선보인 ‘침펄토론’ 대화 내용을 무단으로 가져왔다가 논란이 일자 사과했다.

온라인에 퍼진 각종 글과 ‘썰’은 저작물로 등록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원 작성자의 독창성을 인정받기가 어렵다. 표절 개념조차 흐릿하다.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 예고에 등장한 대사 “살인 한 번이면 참을 인 세 번을 참는다”처럼 원작자가 누구인지 찾기조차 어려운 사례도 허다하다. 익명을 요청한 방송 관계자는 “콘텐츠에 동시대적 현실을 반영해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온라인 밈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추세”라면서도 “다만 이 과정에서 원 작성자가 문제를 제기할 여지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니 제작자가 도의적 책임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대응 방식도 가지각색이다.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RM은 SNS에서 본 글을 가사에 썼다가 표절 시비가 불거지자 “인상 깊었던 느낌이나 구절들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둔다. 대부분 지워지거나 잊혔지만, 지적을 받고 돌아보니 의식하지 못한 채로 이런 잘못을 저질렀다”며 사과했다. 영화 ‘큰엄마의 미친봉고’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썰’에 뿌리를 뒀으나 원작자와 내용 활용을 사전에 협의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제작사는 추후 원작자에 연락해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확산력이 강한 온라인 커뮤니티 특성상 ‘내가 이 이야기의 원래 주인’이라고 주장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이미 널린 퍼진 밈을 활용하는 건 문제 소지가 크지 않겠으나, 특정 문장을 그대로 쓴 경우는 원 작성자가 불쾌하게 느끼거나 시청자가 배신감을 느낄 수 있겠다”고 짚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