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학살 유가족 오영진 “정부 인정 다행”

집단학살 유가족 오영진 “정부 인정 다행”

기사승인 2009-03-03 17:24:02

[쿠키 사회] 부산에 살고 있는 오영진(64·사진)씨는 어릴 적 고생했던 기억이 떠오르는 듯 뜨거운 울음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3일 국민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발발 직후 형무소에 갇힌 재소자와 민간인이 군인과 경찰 등에 의해 집단 학살된 사실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뒤였다.

오씨의 아버지는 대구의 한 광산에서 총무과장으로 근무하던 중 포고령 2호를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고 1950년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당시 4살이었던 오씨는 갓난 여동생을 등에 업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아버지를 면회하러 간 일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날이 아버지를 본 마지막 날이었다. 부산형무소에 이감된 뒤 6·25전쟁이 일어났고 더이상 아버지를 찾을 수 없었다. 언제, 어떻게, 어떤 이유로 사망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오씨는 “먹고 살만했던 우리 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완전히 달라져 당시 30세였던 어머니는 길바닥으로 내몰렸다”며 “추운 겨울 길 위에서 잠을 청해야 했고 구걸해서 끼니를 챙겨야 했다”고 말했다. 당시를 회고하던 그의 목소리는 슬픔에 흔들렸다.

무엇보다 오씨에게 ‘빨갱이 자식’이라는 간판은 평생 짊어져야 할 멍에였다. 그는 “당시는 간판도 빨간색으로 쓰지 못할 정도였다”며 “아버지가 당한 의문의 죽음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일찌감치 느꼈고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도 나를 받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초등학교 5학년 때 공부마저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평생 친구에게조차 아버지의 죽음을 숨겨야 했다.

이제 오씨는 아버지의 죽음을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정부가 학살 사실을 공식 인정한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됐다. 오씨는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그 동안 조사한 것들이 백지로 돌아갈까봐 늘 걱정했다”며 “늦게나마 정부가 인정한 것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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