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스포츠] 거스 히딩크(63·네덜란드) 첼시 감독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것일까. 히딩크 감독은 영국 땅을 밟은 지 3주 째 됐지만 자신의 애제자 중 하나였던 박지성(28·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한 언급을 단 한 차례도 하지 않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최근 선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 대해 언급하면서 특정 선수들을 거론했지만 박지성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는 지난 3일 축구전문 사이트 ‘ESPN 사커넷’과의 인터뷰에서 칼링컵에 대한 품평을 하며 공격수 웨인 루니와 미드필더 마이클 캐릭, 골키퍼 벤 포스터를 입에 올렸다.
지난 1일에는 맨유와의 우승 경쟁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며 “(맨유 골키퍼)에드윈 반 데 사르가 골을 허용하기를 기대하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의 한 마디로 맨유에서 반 데 사르의 존재감은 다시 한 번 부각됐다.
시기에 걸맞는 ‘립서비스’는 그의 상징과도 같다. 이유가 없다면 언급하지 않는 게 히딩크 감독이다. 히딩크 감독이 박지성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2002 한·일월드컵의 추억을 여전히 갖고 있는 한국 팬들에게 여간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히딩크 감독은 과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가정 1. 과거의 제자가 현재의 적이 됐다
히딩크 감독에게는 현재 시급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팀을 재정비해 시즌 중반부터 맨유에 내준 선두를 재탈환해야 한다. 또 최근 칼링컵 우승에 이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와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등 올 시즌 쿼드러플을 노리는 맨유의 독주 체제를 막아야한다.
거액을 들여 자신의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 준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의 입맛에 맞도록 팀 플레이 스타일을 재미있게 변화시키는 것도 히딩크 감독에게 주어진 임무다.
실제로 첼시는 히딩크 감독 선임 후 4연승을 질주, 정규그리그에서 맨유를 승점 3점 차로 추격하며 2위로 도약했다. 지난 시즌에 이어 다시 한 번 맨유의 희생자가 될 뻔했던 첼시였지만 이제는 가장 위협적인 추격자로 돌변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히딩크 감독이 맨유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할 리는 만무하다. 히딩크 감독이 박지성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 것도 첼시가 추격 목표로 겨냥한 맨유 소속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박지성과의 친분을 과시하다가는 현재 자신이 지휘하는 첼시 선수들로 부터 자칫 ‘적과의 동침’으로 오해를 받아 지도력을 상실할 수 있다.
#가정 2. 박지성의 미미한 존재감 “발언할 필요 없다?”
히딩크 감독이 언급할 정도로 박지성이 맨유에서 큰 존재감을 갖고 있는 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박지성은 물론, 한국에 대해서 무엇이든 말하면 마케팅으로 연결할 수 있었던 지난 2002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마케팅이 아니라면 전술적인 이유가 있어야하지만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에게 이 두가지 요소를 모두 만족시키기에 다소 부족하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완전한 주전도, 비주전도 아니다. 미드필더로써 결정력을 보여주지도, 공격포인트를 자주 기록하지도 못했다.
그는 맨유에서 4시즌 동안 100경기 넘게 소화했지만 단 9골을 넣는 데 그쳤다. 올 시즌에는 1골에서 머물러있다. 그라운드를 열심히 휘젓고 다니며 상대 진영을 교란하는 그의 역할이 있지만 상대 팀 감독의 눈에 띌 정도로 인상적이지 못한 게 사실이다.
박지성이 시즌 2호골을 터뜨린다면 히딩크 감독도 다시 한 번 눈 여겨 볼 것이다. 정규리그가 시즌 종반에 돌입하는 상황에서 첼시의 선두 재탈환에 박지성이 ‘방해꾼’으로 작용한다면 굳게 닫혔던 히딩크 감독의 입도 활짝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