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쪽은 봄바람 훈훈,현대미술은 겨울 삭풍

고미술쪽은 봄바람 훈훈,현대미술은 겨울 삭풍

기사승인 2009-03-29 20:22:01

[쿠키 문화] “자, 8억5000만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예, 8억6000만원 나왔습니다. 8억7000만원 없으십니까? (중략) 더 없으십니까? 그럼 9억5000만원으로 낙찰하겠습니다.”

서울 평창동 행사장에서 26일 열린 서울옥션의 올해 첫 메이저 경매에서는 참석자들의 감탄사와 함께 박수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국내 최대의 미술품 경매회사지만 최악의 불황인 만큼 실적이 저조할 것이라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이날 거래는 초반부터 활발하게 이뤄졌다. 1580년에 제작돼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의 감로탱화로 평가된 조선 전기 ‘감로왕도’가 9억5000천만원에 매매된 것을 비롯해 출품된 총 99점 중 80점이 판매됐다. 낙찰률 81%에 총 낙찰액이 52억2930만원에 달했다.

이날 거래는 고미술품이 분위기를 이끌었다. 안중근 의사의 행서 종액 ‘담박명지영정치원(澹泊明志寧靜致遠)’이 4억원에 판매됐으며 김조순의 ‘묵죽서화’는 열띤 경합 속에 추정가 1500만∼1800만원을 훨씬 뛰어넘는 4300만원에 낙찰됐다. 고미술류는 총 46점 중 41점이 판매돼 낙찰률이 무려 89.1%를 기록했다.

이처럼 최근 미술시장은 ‘경제가 좋을 때는 현대미술, 불황기에는 근대 및 고미술품’이라는 업계의 속설을 그대로 입증하며 일종의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 현대미술품으로 구성돼 19∼23일 부산 벡스코(BEXCO)에서 대대적으로 열렸던 화랑미술제의 경우는 전국 80개 갤러리가 참여했음에도 매출액이 32억원에 그쳤다. 이는 당초 예상액 50억원을 훨씬 밑도는 것으로 지난해 매출액 70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 성과였다. 말 그대로 ‘반 토막’이다. 국내 손꼽는 현대미술 아트페어임에도 불구하고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그대로 맞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근대 및 고미술계는 봄바람이 훈훈한 반면 현대미술 쪽은 여전히 겨울 삭풍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미술이 돈이 된다니까 중구난방으로 몰렸던 아마추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종전 거품에 편승했던 현대미술 쪽 가격은 하락했다”며 “하지만 안목 있는 전문 수집가들은 그동안 기다렸던 명품·명작 ‘골동품’들이 시장에 속속 나와 불경기가 오히려 작품을 살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K옥션 관계자는 “컬렉터들이 신중하고 보수적인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급등한 컨템포러리 작품의 불확실성 보다는 이미 미술사적으로 검증을 마친 근대 미술로 회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보면 지금 우리 미술 시장은 지난 몇 년간 다소 ‘흥청망청’했던 분위기에서 탈피해 ‘조정기’를 거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투자·투기 붐에서 감상·소장 위주로 재편되는 이런 흐름은 선진국형 시장으로의 변화 과정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평가도 많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호경 기자
hkkim@kmib.co.kr
김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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