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17일 오후 1시, 서울 영등포역 뒤편 붉은 벽돌로 지어진 3층 건물. 살랑이는 봄 햇살을 비집고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1층 입구에 길게 줄을 섰다. 노숙인, 저소득층, 독거노인….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진료 한번 받지 못하는 100여명의 발길이 하루종일 이어졌다.
가내 철공소와 쪽방들이 뒤엉킨 곳을 비집고 들어선 이 건물은 요셉의원. '영등포 슈바이처'로 불리며 21년을 하루같이 봉사의 삶을 산 선우경식 원장이 터를 닦고 의술을 펼친 곳이다. 1987년 개원한 요셉의원에는 영세민 환자, 행려 환자 43만여명이 거쳐갔다.
선우 원장은 지난해 4월18일 암으로 세상을 떴다(본보 2008년 4월19일 18면). 병원 곳곳에는 아직 그의 손길이 남아 있다. 하지만 병원 안 어디에서도 선우 원장 1주기를 추모하는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고인의 흔적은 고작 원장실에 걸려 있는 하얀 가운을 입고 찍은 사진 몇 장과 1층 로비 한쪽 벽면에 마련된 기념비에서만 느껴졌다. 하얀색 천을 뒤집어쓴 기념비에는 그의 생전 사진과 함께 간단한 이력만 새겨져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많은 사람이 요셉의원의 앞날을 걱정했다. 직원들은 선우 원장의 빈자리를 도저히 메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우 원장이 세상에 뿌린 사랑의 씨앗은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 어느새 풍성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선우 원장이 떠나면서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입을 모았다.
요셉의원을 후원하는 손길은 지난 1년 동안 폭발적으로 늘었다. 2800여명이던 후원자는 4200여명이 됐다. 지난달 여의도성모병원 감염내과 신완석 교수가 의료원장으로 오면서 진료 체계도 틀을 갖췄다. 신 교수는 요셉의원에 오기 위해 퇴직을 5년이나 당겼다. 신 교수는 "그분의 삶을 따라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선우 원장이 실천한 사랑은 자원봉사자와 환자들의 가슴 속에 희망의 싹을 틔웠다. 오후 1∼9시 의료, 이발, 목욕, 배식 등 봉사활동을 마치고 나면 녹초가 되기 일쑤인데도 자원봉사자는 줄지 않았다. 요셉의원에 출근 도장을 찍는 자원봉사자는 전문의 80여명을 포함해 의료 봉사자 200여명, 일반 봉사자 400여명이다.
알코올 중독으로 요셉의원을 찾은 최모(55)씨는 "요셉의원에 나처럼 알코올 중독자였다가 직원으로 일하는 분을 봤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고 말했다.
선우 원장이 생전에 준비했던 사업도 결실을 보고 있다. 2005년 한센인 마을이었던 전북 고창군의 한 폐교를 사들이며 시작한 '고창 알코올 의존증 환자 재활센터'가 대표적이다. 송기권(58)씨 등 3명이 2007년 이곳을 찾았고, 지난해 5월 센터 책임자인 김학대(36)씨 등이 들어오면서 재활센터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재활센터는 1만6500㎡의 땅에 복분자, 매실, 배추 등을 키워 지난해 13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판로만 확보하면 2010년에는 1억원 매출도 가능하다. 농사를 지으며 분노를 조절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법을 배우게 하겠다던 선우 원장의 꿈이 무르익고 있는 것이다.
이문주 2대 원장은 "선우 원장이 큰 그림을 그려놓고 가셨다. 요셉의원이 지금까지 이어온 정신을 그대로 지켰으면 좋겠다던 당부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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