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위기 어떻게 돌파하나] “너도 나도 인턴 채용” 현장을 가봤더니…

[고용위기 어떻게 돌파하나] “너도 나도 인턴 채용” 현장을 가봤더니…

기사승인 2009-04-26 18:03:00


[쿠키 사회] 정부가 지금까지 내놓은 일자리 대책은 고용유지지원금과 실업급여의 지급요건 일부 완화, 양보교섭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와 인턴채용 지원, 과거의 공공근로와 다름없는 6개월짜리 희망근로 프로젝트 등이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 처방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금의 고용 위기 상황이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만큼
보다 더 긴 안목을 갖고 고용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따라 본보는 정부의 고용대책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바람직한 일자리 대안을 알아보고자 한다.

◇채용만 하고 관리는 없다=인턴사원 이정화(가명·24·여)씨가 매일 오전 9시 A은행 압구정지점에 들어서지만, 이씨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직원은 없다. 다들 업무개시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이씨는 최근 전공인 정치외교학과는 무관한 A은행에서 5주간 인턴으로 활동했다. 금융 관련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현장을 직접 보고 체험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기대와 달리 이씨의 일과는 단순했다. 오전에는 로비매니저 업무를 봤다. 말이 매니저지 청원 경찰과 함께 고객 응대 서비스를 하는 것이었다. 오후에는 기업창구, 대출창구, VIP룸 중 원하는 곳에 가서 업무를 배웠다. 그러나 워낙 바쁘게 돌아가는 은행 업무 특성상 시간을 내서 이씨에게 업무를 가르쳐 주는 직원은 없었다. 단순업무에 지칠 때면 “내가 이런 것 하러 여기 왔나”“이 시간에 다른 공부하는 것이 낫겠다”는 회의도 들었다.

이씨에게 가장 도움이 됐던 시간은 역설적으로 점심시간이었다. 직원들은 은행권 입사에 관한 다양한 의견들을 들려줬다. 5주간의 인턴 경험에 대해 이씨는 10점 만점에 5점을 줬다. 이씨는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상당히 유익해 보였는데 실제로 지점에 와보니 내내 당혹감을 떨쳐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같은 인턴사원 채용의 문제점은 과거 외환위기 이후 직장체험 프로그램들에서 이미 드러났던 것들이다. 한국노동연구원 김주섭 연구위원은 “인턴사원제도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고용위기가 심각하다보니 고육지책으로 불가피하게 시행된 측면이 크다”면서 “무엇보다 관리프로그램이 없다보니 중도탈락 등의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2월 인턴사원을 채용한 은행들의 경우 이미 10∼40%가 중도에 이탈한 것으로 드러났다. S은행은 지난 1월 500명을 채용했으나 4월초까지 200여명이 떠나 무려 40%의 이직률을 기록했다.

◇‘정식직원’이라는 벽=지난 1월부터 한 중견건설업체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정민(가명·30·여)씨는 아침에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잠시 숨을 돌릴 때마다 밀려오는 불안감은 그 기쁨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김씨는 “정식직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회사 측이 “공식적인 입장은 말해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어 괴롭단다. 김씨의 동료들도 “인턴은 ‘정원 외’이기 때문에 기존 인력이 퇴직하지 않는다면 막막할 뿐이다”라며 김씨와 같은 고민을 털어놨다. 그들 주변 사람들은 “가능성 없는 인턴을 하며 고생할 바엔 늦었어도 차라리 다른 곳 정규직을 준비하라”고 조언한다.

그나마 김씨에게는 회사측에서 이것저것 일을 가르쳐주기라도 한다. 현재 본사 관리파트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직원들 급여관리, 고용직·일용직 관리 등의 업무를 순차적으로 배워나가고 있다. “아무것도 하는 게 없다”고 푸념만 늘어놓는 김씨 친구의 세무서 인턴에 비하면 나은 상황이다. 그러나 김씨는 “서류, 필기, 면접 전형 등 정시공채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 인턴이 된만큼 노력에 대한 대가가 없으면 화가 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김종각 정책본부장은 “인턴사원이 정규직 고용과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비전이 없으니까 중도에 그만둔다”면서 “올 가을에는 인턴제도를 설계할 때 직무훈련을 포함한 경력관리 프로그램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할 일 없는 행정인턴과 공기업인턴=지방자치단체나 공기업들에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자체들은 자체 일자리 만들기사업을 통해 행정보조업무를 고용하고 있는데 인턴을 추가로 채용해야 한다. 공기업들은 일률적인 예산 10% 감축으로 기존인력도 줄여야 하므로 인턴사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할 여지가 없다.

서울에 있는 종합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최영희(가명·여)씨는 공기업에서 지난 3월부터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월급은 125만원에 4대보험에 가입, 주 5일 8시간 근무로 비교적 좋은 근무조건이다. 그러나 최대 10개월까지만 다닐 수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벽이다.

하는 일도 보고서 작성을 위한 기초조사 정도가 고작이다. 학점, 토익점수, 외국어자격증, 연수경험과 인턴경험까지 이른바 좋은 스펙을 고루 갖춘 최씨는 근무시간 중에도 할 일이 마땅히 없을 때가 많아 영어 공부를 하거나 인터넷으로 취업 정보를 알아보고 있다. 그는 “좀 더 많은 일을 많이 배우길 기대했는데 단순 업무 위주라 실망감이 드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일하면서 가장 괴로운 것은 나이대가 비슷한 정규직원들과 비교하는 마음이 들 때 맞닥뜨리는 한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능력을 보일 기회도 없고 인턴 경험이 정규직원 채용을 보장하지 않으므로 지금도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문수정 서윤경 조국현 기자
thursday@kmib.co.kr

▶뭔데 그래◀ 김연아 연예인급 행보, 문제 없나

임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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