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정치]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다시 정치의 전면에 섰다. 의도한 상황은 아니었다. 친이 주류가 기획했고, 이명박 대통령과 박희태 대표에 의해 추인된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론’이 발단이었다.
방미중인 박 전 대표는 8일 박희태 대표 특사 자격으로 급거 미국을 찾은 김효재 대표 비서실장을 만나서도 김무성 의원 추대론에 대한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박 전 대표를 수행중인 유정복 의원은 “박 전 대표와 김 의원이 만났고, 박 전 대표는 7일 밝힌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외견만 보면, 김 원내대표론은 상황종료된 듯하다. 그러나 내면은 훨씬 복잡하다. 김무성 추대론은 친이·친박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친이 주류측에서 처음 내놓은 실천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박근혜 총리론, 친박 장관 입각설 등 말은 무성했으나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음모론적 분석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통령이 보증한 실현가능한 제안이다. 이를 거부한 정치적 부담을 박 전 대표가 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박 전 대표도 이런 미묘한 상황 변화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의 고민은 좀 더 근본적인 데 있다. 한나라당은 현재 ‘한지붕 두가족’이다. 합의이혼한 것도 아닌 어정쩡한 별거 상태다. 문제는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계속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많은 친박 의원들은 “박 전 대표가 적어도 10월 재·보선까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앞으로 여러 질문에 답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당내에서 단합과 쇄신 과제들이 제기될 때마다, 6월로 예정된 미디어 관련법 처리 등 현안이 터질 때마다 정치권과 여론은 박 전 대표의 입장을 묻게 된다. 박 전 대표가 본의와 상관없이 정치의 전면에 설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박 전 대표 주변에서는 “이번이 이 대통령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김무성 의원이 ‘화해 모색론’의 대표적 인물이다.
친이 주류측은 더 다급하다. 박희태 대표는 “우리의 단합 행진에는 멈춤이 없고, 멈출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무성 카드가 여전히 유효한 카드임을 확인한 발언이다. 친박 중진의원도 “박 전 대표가 김 의원의 출마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관계 악화의 주된 책임은 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의견이 더 많다. 한나라당 김용갑 상임고문은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되지 못하는 책임은 이 대통령이 90%, 박 전 대표가 10% 있다고 본다”고 표현했다.
지난 4월 경주 재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참패했지만, 박 전 대표는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 ‘한나라당 참패=박 전 대표 승리’라는 이상한 등식이 생긴 셈이다. 이런 비틀림은 10월 재·보선이 다가올수록 더 커질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도 점차 다가오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남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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