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20일 오후 11시 47분 서울 등촌동 88체육관 앞 4차선 도로. 100여m 앞에서 직진하던 검정색 승용차 한대가 음주 단속 중이던 강서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의 정지 수신호를 무시한 채 갑자기 속도를 높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순간 단속 현장에 있던 경찰들 움직임도 빨라졌다. 차량번호를 확인한 경찰관이 무전기로 번호를 알리고, 대기 중이던 순찰차는 곧바로 추격에 나섰다.
순식간에 사라진 검정색 차량은 음주단속 장소에서 불과 50m 떨어진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서 발견됐다. 운전자 이모(29)씨는 주차한 뒤 시동을 끄고 운전석 좌석을 눕혀 누운 채였다. 경찰의 요구에 차량에서 내린 이씨는 처음에는 음주를 순순하게 시인했다.
하지만 고분고분한 태도는 음주감지기에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돌변했다. 이씨는 “나는 이 아파트에 살고 있고, 주변 편의점에서 여자친구와 술을 마셨을 뿐 운전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집으로 가겠다며 도망치려다 제지하던 경찰관에게 서슴 없이 주먹을 날렸다.
현장에서 수갑이 채워진 이씨는 3번의 음주측정마저 거부했다. 40여분동안 실랑이를 벌이던 이씨는 강서경찰서로 이송돼 공무집행 방해 및 음주측정거부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심야시간대 도로 위에서 음주단속을 벌이는 경찰들은 위험천만한 상황에 자주 내몰리고 있었다. 야광 조끼, 음주단속 입간판, 임시 구조물은 안전을 담보해주기에는 초라하다. 이씨처럼 단속현장 인근에서 잡히는 경우도 있지만 엄청난 속도로 음주단속 경찰을 밀치고 도심을 질주하는 차량도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도주 차량을 쫓을 때는 경찰들도 초긴장한다고 했다. 김정훈 경장은 “도망가는 사람은 죽기 살기로 도망간다”면서 “서울 도심에서 시속 130∼140㎞로 달리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 때는 손발이 다 떨릴 정도”라고 말했다.
대부분 운전자들이 음주단속에 순순히 응했지만 여전히 경찰에게 침을 뱉거나 시비를 거는 운전자도 많았다. 음주단속 현장을 참관한 주민 김형길(53)씨는 “무릎을 꿇고 한번만 봐달라는 운전자를 보면 음주운전을 왜 하는지…. 나도 운전하지만 경찰하기 힘들겠다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31개 경찰서는 지난달부터 음주단속 현장에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주부 김미화(39)씨는 “부모들이 자녀와 함께 음주 단속 현장을 경험하면 좋을 것 같다”면서 “음주운전의 위험도 알리고 경찰의 힘든 점도 알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음주단속은 비 때문에 예정됐던 새벽 1시보다 30여분 빨리 끝났다. 150분 동안 초긴장 상태였던 경찰들 얼굴에도 그제서야 미소가 비쳤다. 철수를 하던 한 경찰은 “음주단속은 본인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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