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 서거] 경찰 발표로 재구성한 투신 순간

[노 전 대통령 서거] 경찰 발표로 재구성한 투신 순간

기사승인 2009-05-24 22:28:01


[쿠키 사회]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23일은 짧고도 길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전 5시21분 유서를 작성하기 시작한 뒤 서거하기까지는 4시간여 밖에 걸리지 않았다.

경남지방경찰청은 24일 수사브리핑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당일 행적을 자세히 밝혔다. 경찰은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할 때 경호를 맡았던 이모(46) 경호관의 진술을 들었고, 마을 주변 경비초소에서 근무하는 의경들의 목격담도 확보했다.

경찰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등산을 나서기 직전 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노 전 대통령은 오전 5시21분 서재 겸 거실에 있는 자신의 컴퓨터를 켜고 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14줄의 글을 쓰는 데는 20분 정도 걸렸다. 중간에 한 차례 저장을 하고 5시44분에 마지막으로 저장키를 눌렀다.

그리고 1분 뒤 노 전 대통령은 인터폰으로 당직 근무자였던 이 경호관에게 “산책 나갈게요”라고 연락했다. 평소에도 노 전 대통령은 아침 일찍 경호관 1명만 대동하고 사저 뒷편 봉화산을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당직 경호관은 이 시간대면 인터폰이 울릴 것을 대비해 준비를 한다. 5분 뒤 노 전 대통령은 아이보리색 재킷에 검정색 바지를 입었고 등산화를 신은 뒤 사저를 출발했다.

봉화산 7부 능선에 있는 부엉이 바위까지 가는 길은 평소보다 조금 더 걸렸다. 사저에서 500m 떨어진 부엉이 바위까지는 곧바로 갈 경우 15분이면 충분한 거리다. 하지만 이날은 20분 가량 걸렸다. 부엉이 바위에 노 전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낸 시간은 6시20분쯤이었다. 경호관은 1∼2m 거리를 둔 채 노 전 대통령의 뒤를 따랐다. 부엉이 바위에 서 있는 모습을 사저경비 초소의 의경이 보고 경호상황실에 인터폰으로 알렸다.

노 전 대통령은 부엉이 바위 위에서 20여분간 머물렀다. 노 전 대통령은 경호관에게 “담배가 있느냐”고 묻자 경호관이 “없습니다. 가져올까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됐다. 가지러 갈 필요 없다”고 말했다. 또 “여기가 부엉이 바위인데 실제 부엉이가 살아서 부엉이 바위인가”라고 가벼운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실제로 부엉이 바위는 부엉이가 많이 살고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해 봉하마을에 내려온 뒤 부엉이 바위로 자주 산책을 했지만 최근에는 찾은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느릿느릿 오가던 이야기는 노 전 대통령이 바위 바로 뒤 등산로 쪽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누구지? 기자인가”라고 물으면서 멈췄다. 이 경호관이 등산로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노 전 대통령은 바위 아래로 뛰어내렸다. 시간은 오전 6시45분이었다.

이 경호관은 경찰에서 “등을 돌리는 순간 노 전 대통령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지만 외부인에게 모습을 노출하기 싫어 몸을 숨기기 위해 한 두 걸음 물러서는 것이라 생각했다”며 “그런데 다시 돌아보는 순간 노 전 대통령이 뛰어내리는 뒷모습을 봤다”고 진술했다.

이 경호관은 황급히 40m가 넘는 바위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노 전 대통령은 머리 등에 심한 상처를 입고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이 경호관은 무전으로 긴급 상황을 알린 뒤 노 전 대통령을 업고 황급히 산 아래로 뛰었다. 이동 중에 과다 출혈은 없었다. 추락 장소에도 핏자국은 거의 없었다. 몇 가닥의 머리카락과 추락하는 도중 벗겨진 왼쪽 등산화, 옮기는 과정에서 벗겨진 피묻은 상의만 남아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오전 7시쯤 경호 차량에 실려 마을에서 가까운 김해 세영병원으로 옮겨졌다. 의료진은 30여분간의 심폐소생술을 했음에도 노 전 대통령이 의식을 되찾지 못하자 인공호흡기를 대고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이송했다.

노 전 대통령은 오전 8시13분부터 양산부산대병원에서 1시간 가량 심폐소생술 등 응급 처치를 받았지만 소용 없었다. 의료진은 결국 오전 9시30분 심폐소생술을 중단했다. 병원 관계자는 “두개골 골절로 인한 머리 손상이 직접적인 서거 원인이고 우측 발목 등 여러 곳에서 골절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김해=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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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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