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한 분인데 저도…” 본보 기자, 자살 예고 편지 건넨 장애인 목숨 구했다

“존경한 분인데 저도…” 본보 기자, 자살 예고 편지 건넨 장애인 목숨 구했다

기사승인 2009-05-27 23:21:01


[쿠키 사회] 26일 밤 10시40분쯤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가 있는 서울역광장의 기자석으로 30대 남자가 찾아왔다. 시각 2급 장애인인 이모씨였다. 그는 혼자 앉아 있던 기자에게 접힌 편지를 건네면서 "내가 떠난 뒤 읽어달라"고 말했다.

이씨가 황급히 사라지고 나서 편지 첫줄을 보는 순간 아찔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들은 뒤 죽음을 결심했다는 말로 시작됐다. 이어 "제일 존경하는 분인데 돌아가셨다는 말에 며칠을 충격으로 보냈다"며 "어젯밤 노 전 대통령을 따라 죽기 위해 한강에 갔다가 죽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썼다. 이씨는 이날 오후 서울역 분향소에서 조문한 뒤 부질없는 결심을 다시 굳혔다. 그리고 광장 한 귀퉁이에서 "내가 죽으면 신문에 노 전 대통령을 따라 죽었다고 써달라"고 편지를 쓴 뒤 기자에게 건넨 것이었다. 떠난 뒤 읽어보라는 말은 당장 서울역 지하철 승강장에서 몸을 던지기 위한 것이었다.

마음이 급했다. 곧바로 근처에 있는 경찰관을 찾았다. 이 경찰관은 서울역 사무실에 무전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이씨의 뒤를 쫓았다. 다행히 연락 받은 서울역 공안 직원이 서울역 대합실에서 이씨를 막을 수 있었다.

지난 23일에도 광주 서구 모 아파트에서 김모(34)씨가 방안 옷걸이에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그의 형이 발견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한 뒤 컴퓨터에 개인적인 신병비관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겨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은 결코 옳은 방법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모방 자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과거 유명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일반인들이 이를 모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연세대 정신과 이홍식 교수는 "비슷한 억울함이나 한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숨진 사람과 동일시하면서 옳지 않은 생각을 행동에 옮길 수 있다"고 말했다. '서민의 대통령'으로 불렸던 노 전 대통령은 비록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어렵고 힘든 서민들이 뒤따를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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