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말고 가족으로 불리고 싶어요”

“부부말고 가족으로 불리고 싶어요”

기사승인 2009-06-04 17:50:05
[쿠키 사회] 전화벨이 울렸다. 박소영(42)씨는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네”라는 짧은 대답이 적막을 깼다. 전화를 끊고 걸레질을 마저 했다.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었다. 여느 때와 같은 하루. 하지만 박씨는 온종일 깊은 물 속에서 허우적대다 속절없이 무너져 가라앉는 듯 했다. 네 번째 체외수정(시험관아기) 시술 실패를 전해들은 2006년 7월 어느 날의 일이었다.

박씨는 난임(難妊)과 싸운 5년 가운데 그 날 하루를 가장 힘들게 떠올렸다. 난임 여성에게 4번째 체외수정 실패는 곧 ‘불임(不妊)’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4일 인천 옥련동에서 만난 그는 “남편과 둘이 사는 우리를 사람들은 ‘가족’이라 하지 않고 ‘부부’라고 한다”며 “부부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지만 아이와 함께 가족을 이루려는 소망을 이루지 못해 많은 난임 부부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가 난임 진단을 받은 것은 2004년 9월이다. 자궁외임신으로 오른 나팔관을 잘라내면서 자연 임신이 힘들어졌다. 두 달 뒤 그는 15년간의 직장생활을 접었다. 일을 하며 체외수정을 하는 데는 난관이 많기 때문이다. 시술 한 번 하는데 한 달 동안 8∼15번 병원에 가야 한다. 전신마취를 하고 난자채취라도 하는 날은 하루 쯤 쉬어야 하는데, 눈치보지 않고 쉴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된 회사는 거의 없다.

난임이란 얘기를 꺼내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난임 부부는 돌잔치나 누군가의 임신 소식에서 소외되는 일이 허다하다. 박씨는 손아랫 동서의 임신 소식을 6개월 뒤에 안 적도 있다. 그는 “많은 난임 여성들이 죄인처럼 숨어서 지내고, 사회는 그저 딱한 남의 일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며 속상해했다.

4번의 체외수정 시술을 하면서 좋다는 한의원도 숱하게 찾아다녔다. 한 번에 300만∼400만원씩 드는 체외수정 시술비와 약값 등으로 5년 동안 2000만원은 족히 썼다. 부모님 도움도 받고 적금도 깼다. 8년차 부부지만 모아놓은 돈이 없다. 정부가 난임부부 지원을 시작한 2006년에야 비로소 보조금 150만원을 1번 받을 수 있었다.

정부 지원금만으론 형편이 안 돼 아이 갖기를 포기한 난임 부부도 적지 않다. 기초생활 수급자에게는 270만원씩 지원되지만 먹고 살기조차 힘든 이들에게는 개인이 내야 하는 수십만원도 부담스럽다. 난임으로 인한 갈등 때문에 이혼하거나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우리나라 출산율은 1.19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난임부부는 140만쌍 정도로 추정된다. 포천중문의대 윤태기 교수는 “난임은 치료 확률이 50%”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책적으로 난임 문제를 해소해 나가다보면 저출산 문제의 큰 짐도 덜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문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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