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고령이 된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잊혀지고 있다. 5일 서울 통인동에서 만난 이영수(81)옹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옹은 외로움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는 “아무하고도 얘기를 못하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이옹은 6·25 전쟁이 터진지 한달도 안된 1950년 7월15일, 22세 꽃다운 나이에 국군에 입대했다. 그가 겪은 첫 전투는 경북 경주 인근에서 벌어졌다. 인민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빗발치는 총알을 뒤로 하고 달아났다. 국군이 북진하면서 그도 함께 북으로 올라갔다. 한평생 발목을 잡은 다리 부상은 그해 10월 함경북도 단천에서 당했다. 눈앞에서 수류탄이 터지는가보다 했는데 그 파편이 오른쪽 발바닥을 파고 들었다.
그 때의 상처는 이옹을 집안의 가장 자리에서 밀어냈다. 제대 뒤 직장을 구하려했지만 사람들은 부상을 입어 거동이 불편한 상이군인을 피하기만 했다. 아내가 파출부 일을 해 돈을 벌었다.
이옹이 짐을 던 것은 77년 정부가 전쟁에서 부상을 당한 상이군인을 지원하면서 부터다. 신체검사 결과 상해 6급 판정을 받고 작게나마 지원금을 받았다. 98년 파편 주위에 염증이 퍼지면서 결국 다리를 절단했다. 상해등급이 4급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이옹의 일상은 무료했다. 다리를 절단한 뒤 주로 집에서 하루를 보낸다. 가족은 모두 흩어졌다. 10년전 중풍으로 누운 아내는 지난해 골절상까지 입어 장애 2급 판정을 받아 2월 요양시설에 들어갔다. 직업 군인인 아들과 간호사인 딸도 지방에 살아 얼굴 보기 힘들었다.
다행히 지난해 10월 보훈도우미로 만난 임덕순(53·여)씨가 말벗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옹이 “예전엔 보훈처에서 가정 환경 조사한다고 1년에 한 번씩 나왔는데 요즘은 통 안 온다”며 섭섭해 하자 옆에 있던 임씨가 “그래서 제가 대신 오잖아요”라고 맞받아쳤다. 임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이옹 집을 찾아 빨래와 밑반찬을 해 준다.
이옹은 낯선 기자의 방문을 밝은 미소로 반겼다. 그리고 “이렇게 6월에라도 찾아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라고 연신 내뱉었다. 그는 “언론이건 보훈처건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만 찾지 말고 상이군인들에게 꾸준히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해 보였다.
국가보훈처는 2006년 보훈도우미 제도를 정식으로 도입했다. 독거노인이나 노인성 질환으로 거동이 불편한데 가족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65세 이상 국가유공자가 대상이다. 지난해 말까지 39만9113명이었다.
보훈처는 현재 대상 가구를 직접 방문해 서비스가 필요한 가정에 대해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 중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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