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는 날마다 오전 5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인 허윤희(55)씨의 얼굴을 닦아주고 간단한 화장을 해주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퇴근하면 곧바로 집으로 향해 거동이 불편한 아내와 살가운 대화를 나누고 설거지와 청소 등 집안일도 도맡아 한다.
단란한 정씨의 가정에 불행이 닥친 것은 1995년 12월. 중앙선을 침범한 자동차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해 정씨는 왼쪽다리 대퇴부와 팔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고 5개월간의 입원치료와 두번의 수술 끝에 인공관절에 의지하는 신체장애인(지체 5급)이 됐다. 옆자리에 탔던 부인은 시신경이 마비되고(시각장애 1급) 뇌손상까지 입어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두 아들과 남편의 간병 덕분인지 아내는 4년8개월여만에 기적처럼 깨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앞을 볼 수 없고 기억상실증을 앓는 반신불수 신세다.
정씨는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그동안 2011년 광주세계환경엑스포를 주도적으로 준비하는 등 전담업무에 소홀함이 없었다고 한다. 정씨는 “부모가 한꺼번에 사고를 당해 보살핌이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구김살없이 성장한 두 아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라며 “책임이 막중해진만큼 더욱 공직생활에 충실할 각오”라고 말했다. 76년 공직에 투신한지 33년만에 서기관에 오른 정씨는 이날 가장 먼저 두 아들에게 문자메시지로 기쁜 소식을 전했다. 광주=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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