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극단의 ‘위안부 사과’ 연극…아스팔트 객석은 눈물바다

일본 극단의 ‘위안부 사과’ 연극…아스팔트 객석은 눈물바다

기사승인 2009-07-22 17:46:01

[쿠키 사회] 무대는 뜨거운 여름 햇살에 달궈진 아스팔트. 무대 장치는 경찰의 저지선 앞에 펼쳐진 하늘색 천 뿐이었다. 의상은 곱게 차려입은 한복이 전부였다. 무대 위에는 한국말을 못하는 일본인들이 섰다. 연기는 어설펐고 발음은 어눌했다. 대사를 잊어 먹고 쩔쩔매기도 했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들이 기뻐할 때 함께 웃었고 눈물을 흘릴 때 함께 울었다. 마지막에 출연자 모두가 나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름을 넣어 ‘아리랑’을 부를 때 도로 위 객석은 눈물바다가 됐다.

22일 낮 12시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작은 연극 공연이 있었다. 지난 19일 한국에 들어온 극단 ‘수요일’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함께 마련한 자리다. 정대협은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극 제목은 ‘세나의 소원’. 주인공 세나는 일본 초등학생들로부터 ‘조선으로 돌아가라’는 언어 폭력을 당하면서 차별과 위안부 문제를 절감한다. 세나의 호소를 들은 가족이 함께 나섰다. 폭력을 행사한 초등학생들에게 일본의 잘못을 알려줬고, 의식있는 어른들에게 전달됐다. 극중 등장인물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진실을 알리고 싶어서 여기에 왔다”는 위안부 할머니의 말을 되짚었다.

단원들은 2개월 전부터 공연을 준비했지만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위안부 할머니 7명을 수천명의 관객보다 더 크게 느끼는 듯했다. 그들의 짐을 덜어준 것은 공연 직전 벌어진 작은 해프닝. 일본대사관 2층의 창문 하나가 열렸고 한 남성이 5분여간 집회 현장을 지켜봤다. 875차례 수요시위를 하는 동안 일본대사관 창문이 열린 것은 처음이었다.

극단 ‘수요일’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오사카에 있는 시민단체 활동가와 시민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연극은 도쿠다 유키히로(66) 단장이 실제로 겪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유키히로 단장은 2004년 다카라즈카시 50주년 행사에서 한국무용을 선보인 조총련계 여학생들을 향해 한 일본 여성이 ‘조선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스스로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한국인 차별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고발하는 것이 과제라고 생각했다.

극단은 2005년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초연을 했고 이후 매년 한국을 찾았다. 유키히로 단장은 “할머니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오히려 할머니들이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연극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극단 단원들은 공연이 끝난 뒤 정대협에 31만838엔(415만원 상당)의 성금을 전달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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