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서로 본 조선시대 세금제도…국세청 특별기획전

고문서로 본 조선시대 세금제도…국세청 특별기획전

기사승인 2009-08-12 05:16:00
[쿠키 경제] ‘부모 양쪽의 토지와 노비를 상속하니 매년 자손들이 쌀을 내서 제사를 돕는다. 친자녀는 10말(5.2∼6㎏), 친손자녀는 5말, 친증손자녀와 외손자녀는 2말씩 낼 것.’

1566년 5월 율곡 이이 선생의 7남매가 한양(서울)에 모여 작성한 문서의 일부다. 5년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 이원수씨의 유산 분배를 의논한 결과였다. 이들은 ‘봉사조’(奉祀條·제사를 모시기 위한 목적의 재산)를 따로 떼어놓고 아들, 딸 구분없이 거의 똑같이 나눠 가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11일 “조선시대에는 부모의 사망시 3년상을 치르고 난 후 재산을 나누는 것이 관례였다”라며 “3년이 지나기 전에 재산을 나눠가졌을 경우 처벌당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1847년 경상도 상주에선 이생원 댁 노비 금쇠(今金)는 백생원 댁 노비 휼덕(恤德)을 만나 3두락지(1980㎡·약 600평) 밭을 10냥에 파는 내용의 계약서를 썼다. 땅을 파는 이유로 “긴히 쓸 곳이 있다”고만 적었다. 그러나 이는 차명 계약서로 각자의 주인을 대신해 작성한 것이다.

조선시대 토지에 대한 차명계약서는 탈세 목적은 아니었다. 다만 양반이 직접 거래에 나서는 것을 꺼려해 토지 매매나 소송, 청원서 제출 등에서 노비를 시켜 대행하는 방식이 일반화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증여 목적의 문서도 있었다. 조선중기 인조 반정의 공신인 이귀의 둘째 아들 이시담은 둘째 손자 공저가 1657년 과거에 합격하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여자 노비 1명과 땅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당시의 문서 작성에는 영의정을 역임했던 이시백(친형)과 익산군수 등이 증인으로 참여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당시 유서 작성에는 서양에서도 보기 힘들 만큼 증인을 여럿 세워 재산분배와 함께 장래를 부탁하는 의미를 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은 조세박물관 개관 7주년을 맞아 내년 8월까지 조선시대 땅과 관련된 세금 등 사회제도와 관습을 살펴보는 특별기획전을 연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
정동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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