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기인 대회를 하루 앞둔 27일 역사신탁 운동을 주도한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50)를 서울 인사동 한 찻집에서 만났다. 그는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태화관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한 교수는 역사적인 장소가 철거돼 사라지고 그 자리에 비석만 남아있는 현실에 짙은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역사신탁 운동의 첫 사업은 조선통감 관저를 복원하는 ‘남산 역사신탁사업’이다. 서울 남산 왜성대 중턱에 있었던 조선통감 관저는 한일합방 조약이 맺어진 곳이다. 지금은 은행나무 한 그루와 판석만 남아 있다. 역사를 여는 사람들은 한일합방 조약 공포 100주년인 내년 8월29일 복원을 목표로 모금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유스호스텔 등으로 쓰이는 남산의 옛 중앙정보부 본관과 별관 등 건물 4곳도 근·현대 역사 유적으로 지정해 2011년까지 ‘아시아 인권과 평화 박물관(가칭)’으로 개조할 예정이다.
한 교수는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도 허물기보다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며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세계적인 명소가 된 것은 수용소 건물을 그대로 보존해 과거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국내는 물론 해외동포를 상대로 20억원을 목표로 모금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의미있는 일에 사회 인사들도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어 힘을 보탰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천정배 민주당 의원 등이 손을 잡았다.
걸림돌도 있다.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남산 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이다. 서울시는 중앙정부보 건물들을 모두 철거하고 녹지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한 교수는 “서울시는 남산 르네상스가 역사복원을 위한 사업이라고 말하지만 역사적인 건물들 없애고 성곽 좀 쌓는다고 역사 복원으로 볼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서울시가 철거에 나서기 전에 설득을 하고 법적으로 보호할 방법을 찾아볼 것”이라며 “서울시에서 남산 르네상스 사업을 계속 추진한다면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이용해 영향력을 행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뒤 한 교수는 태화관이 있던 자리를 알리는 비석을 바라보며 “큰 싸움이 될 것이다. 역사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존해 후세들이 역사교육의 장으로 삼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