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신탁운동 펼치는 한홍구 교수 “아픈 역사 허물기 보단 보존해야”

역사신탁운동 펼치는 한홍구 교수 “아픈 역사 허물기 보단 보존해야”

기사승인 2009-08-27 18:06:02
[쿠키 사회] 국민 모금이나 기부로 훼손 위기에 놓인 역사적 건축물이나 대지를 매입해 보존하고 복원하는 ‘역사신탁(歷史信託·HistoryTrust)’ 운동이 국내에서 처음 시작된다. 일반 시민과 종교인, 역사학자, 문화예술인 등이 참여한 ‘역사를 여는 사람들’은 28일 서울 예장동 문학의 집에서 발기인 대회를 열고 역사신탁 사업을 시작한다.

발기인 대회를 하루 앞둔 27일 역사신탁 운동을 주도한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50)를 서울 인사동 한 찻집에서 만났다. 그는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태화관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한 교수는 역사적인 장소가 철거돼 사라지고 그 자리에 비석만 남아있는 현실에 짙은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역사신탁 운동의 첫 사업은 조선통감 관저를 복원하는 ‘남산 역사신탁사업’이다. 서울 남산 왜성대 중턱에 있었던 조선통감 관저는 한일합방 조약이 맺어진 곳이다. 지금은 은행나무 한 그루와 판석만 남아 있다. 역사를 여는 사람들은 한일합방 조약 공포 100주년인 내년 8월29일 복원을 목표로 모금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유스호스텔 등으로 쓰이는 남산의 옛 중앙정보부 본관과 별관 등 건물 4곳도 근·현대 역사 유적으로 지정해 2011년까지 ‘아시아 인권과 평화 박물관(가칭)’으로 개조할 예정이다.

한 교수는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도 허물기보다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며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세계적인 명소가 된 것은 수용소 건물을 그대로 보존해 과거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국내는 물론 해외동포를 상대로 20억원을 목표로 모금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의미있는 일에 사회 인사들도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어 힘을 보탰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천정배 민주당 의원 등이 손을 잡았다.

걸림돌도 있다.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남산 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이다. 서울시는 중앙정부보 건물들을 모두 철거하고 녹지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한 교수는 “서울시는 남산 르네상스가 역사복원을 위한 사업이라고 말하지만 역사적인 건물들 없애고 성곽 좀 쌓는다고 역사 복원으로 볼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서울시가 철거에 나서기 전에 설득을 하고 법적으로 보호할 방법을 찾아볼 것”이라며 “서울시에서 남산 르네상스 사업을 계속 추진한다면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이용해 영향력을 행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뒤 한 교수는 태화관이 있던 자리를 알리는 비석을 바라보며 “큰 싸움이 될 것이다. 역사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존해 후세들이 역사교육의 장으로 삼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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