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정치]
이명박 대통령이 3일 차기 총리로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을 선택한 것은 다목적 포석이다. 정 전 총장은 지역적으로는 충청권, 이념적으로는 보수 보다는 진보 진영에 가깝다. 이 대통령이 기용할 수 있는 스펙트럼을 넘어서는 인물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 대통령은 그를 선택하면서 지역과 이념 통합은 물론 내년 지방선거와 차기 대선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래서 "드디어, MB가 정치를 시작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 대통령은 일찌감치 충청권 인사를 중심으로 후보군을 물색했다. 우선적으로 고려됐던 1순위 후보는 심대평 전 자유선진당 대표였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회창 총재의 반대로 심 전 대표 총리 기용이 무산되면서 무게중심이 정 내정자에게 기울었다"고 말했다. 물론 정 내정자가 충청권을 대표하느냐는 이론이 있다. 그러나 그는 2007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거론될 당시부터 충청권과의 인연을 강조해왔다.
여권내 차기 대선구도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현재 여권 차기 구도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독주하고, 정몽준 최고위원과 김문수 경기지사가 추격하는 형세였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새로운 카드를 손에 쥐게 됐다. 차기 후보군이 늘어날수록 대통령의 국정장악력은 높아지게 된다. '디바이드 앤 룰(divide and rule·분할통치)' 전략이 가능해진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정 내정자가 충청권 표심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총리 역할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파급 효과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수도권의 중도개혁성향의 표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게 청와대의 판단이다.
총리 인사를 통해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 노선이 다시 한 번 부각되는 효과도 작지 않다. 이 대통령과 정 내정자는 이념적 지향이 다른 것으로 평가돼 왔다. 자칫 일부 보수 진영의 반발이나 '코드' 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정 내정자 MB 정부 출범 이후 대운하, 녹색 뉴딜 등 MB노믹스의 핵심 정책들을 거침없이 비판해왔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그를 선택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강학파의 수장이던 남덕우 교수를 기용하면서 '밖에서 비판 많이 했으니 안에서 한번 해봐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정 내정자 본인도 "이 대통령과 나는 경제 철학이 큰 차이가 없다"고 코드론을 차단하고 나섰다. 오히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통합 행보의 정점이라는 설명도 나왔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정운찬 발탁은)우리가 추구했던 중도실용의 확고한 상징 아니겠는가"라며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부분도 포용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정 내정자가 정부의 재정과 복지를 중요시하는 '케인지안(케인즈주의 경제학자)'인 만큼,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완전히 다르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남도영 노용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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