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지역 교파를 초월해 어느 교회, 어느 기관이든지 불러주신다면 지체없이 달려가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물려받은 음악적 재능을 선보이겠습니다.”
1급 시각장애인 성영광(58·맹인교회·사진) 집사는 전국 각지 교회를 돌며 반평생을 아코디언으로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불러온 찬양사역자다.
그는 예수님이 소경이었던 바디메오에게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부모나 자신의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하실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하신 말씀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리라”라는 말씀에 따라 기적을 굳게 믿고 산다.
그는 세 살 때 병마로 시력을 잃었다. 곧이어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마저 가출하는 바람에 갑자기 천애 고아가 됐다. 앞 못보는 아이는 친척들에 의해 부산 맹인보육원에서 맡겨졌다. 그런 그가 주님을 직접 만난 건 보육원 맹인학교 시절이었다. 그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미래를 맡겼다.
학창시절 어떤 과목보다 음악이 좋아했고 재능도 크게 인정받았던 그는 아코디언을 밤낮없이 연습했다. 1972년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맹인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뛰어난 노래와 아코디언 연주 솜씨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무대를 돌아다녔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만만치 않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연주 솜씨와 음악적 재능이 아니던가! 그는 1973년 부산문화방송 가요챔피언 연말결선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프로 가수가 되기 위해 음반 제작을 시도한 적도 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으로서 음반 한장 내는 일도 쉬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이 바디메오에게 했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리라”는 말씀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한번도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껴 본 적은 없었다.
맹인교회 부흥회에서 그는 당시 전국을 다니는 부흥강사로 명성을 날리던 신현균 목사를 만나게 됐다. 신 목사는 “아코디언과 노래 솜씨가 범상치 않다. 찬양사역자로 부흥회에 함께 다니자”고 제안했다.
부흥회 찬양 수입은 그동안 그가 밤무대나 각종 행사에서 받는 사례비보다 훨씬 적었다. 하지만 전문 찬양사역자라는 보람 때문에 행복한 나날이었다. 게다가 부흥회를 통해 유명해지면서 전국 교회에서 찬양 초청이 쇄도했고 그의 삶도 차츰 윤택해졌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섬기던 신 목사가 소천하면서 부흥회 찬양 사역의 기쁨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됐다. 특히 교회들이 신시사이저 등 첨단 음향기기들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그의 일거리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는 월 45만원의 장애복지비로 대구 대현2동 사글셋방에서 어렵게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인생의 고비 때마다 하나님은 캄캄한 세상에서 빛으로 인도해주신 분”이라면서 “하나님을 위해 찬양할 기회만 자주 주어진다면 그 삶 자체가 얼마든지 행복하고 감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락처 053-954-7756 , 010-7675-4311. 대구=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상조 기자 sangjo@kmib.co.kr